별이 빛나는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희락을 주시는데 우리는 욕망의 진흙 파이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도가 추구하고 선택해야 하는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본문은 가나의 혼인 잔치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성도가 가져야 할 참 기쁨이 무엇인지 찾고자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잔치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상징합니다(사 24:11).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포도주 즉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이 기계적이 되며 제도화되는 바람에 기쁨이 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감격이 계속 유지되기가 어렵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우리 인생 속에 새로운 은혜와 기쁨의 포도주가 부어져야 합니다. 인생의 참 기쁨이 회복되려면 첫째로, ‘내게 포도주가 없다’라는 현실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았을 때 그는 죄인이었음을 하나님께 고백을 했습니다(사 6:5). 그의 고백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포도주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에게만 포도주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즉시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포도주가 아닙니다. 행복과 기쁨은 사람과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포도주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장 물이 포도주가 변하기를 원합니다. 당장 나아야 하며, 사업이 잘 돼야 하며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채워야 합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십니다. 성도는 연회장이 아니라 물 떠온 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잔치가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물과 같은 인생을 포도주의 향기의 인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사랑의 놀라운 힘!

영국의 BBC 방송은 20세기 최고의 인간 승리자로 피터 힐을 선정했습니다 헐은 영국의 수영선수로서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습니다. 초등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장 선생님의 대답은 냉랭했습니다. “학부모들의 반대가 워낙 심합니다. 저희들을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때 헐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처음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헐을 보통아이로 키웠습니다. 파티에도 데려가고 모임에도 참석시켰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아들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너는 건강한 사람보다 장점이 많다. 용기를 잃지 말아라.” 피터 헐은 열 살때부터 수영을 배웠습니다. 그는 머리를 움직여 방향을 잡고 팔을 휘저었습니다. 수영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는 맨 꼴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계속 노력을 했습니다. 피터 헐은 88 서울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을 했습니다. 또한 92 바르셀로나 장애인 올림픽에도 출전을 해서 3개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인간 승리자로 선정된 피터 헐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보통사람으로 인정해 준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편견 없는 사랑이 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사랑에는 어떤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좌지우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을 해 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 하든, 어떤 흠이 있든지 그리고 어떤 부족한 점이 있든지 있는 우리를 그대로 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었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습니다. 장래의 우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누군가가 우리의 사랑을 통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 그리고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처럼 편견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세워주게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다니엘은 어두운 밤과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환상이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다니엘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캄캄한 밤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빛을 필요로 합니다. 어두운 인생길을 환하게 비쳐주는 주님의 빛을 필요로 합니다. 시편 기자가 선포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입니다. 내 길을 환하게 비추는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이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1) 부활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환난이 이스라엘에게 닥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 절). 이와 같이 마지막 때에 큰 고난의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활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은 백성이 깨어나 영생을 받겠고.”하나님은 부활을 성도의 삶에 최종 목적지로, 최고의 상급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부활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부활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이 땅 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듭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듭니다. 부활 신앙을 갖고 있을 때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게 됩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도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활 때에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하여 모두 갚아 주십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캄캄한 밤을 지나가게 합니다. (2) 연단을 통해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장차 있을 연단에 대하여 다니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7절). 그리고 그 연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한다고 했습니다(10절). 우리가 캄캄한 밤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연단의 과정입니다. 이 연단을 통해 우리는 더 거룩한 삶을살아가게 됩니다. 스펄전 목사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얻은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통은 내 집에서 최고의 가구요, 목사의 서재에서 최고의 책이다.” 우리는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을 연단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연단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손을 잡아 주십니다. (3)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의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리를 주십니다. 사명의 자리에 두십니다. 다니엘에게 바벨론은 캄캄한 밤이지만 그곳에서 빛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은혜의 빛, 말씀의 빛 그리고 사랑의 빛을 비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연단 속에 두는 하나님의 뜻이요, 인도하심 입니다.세상은 밤이지만 우리는 빛입니다.

인생의 타이밍

운전을 하다 보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 자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조금만 멈칫하거나 속도를 낮추다 보면 신호등에 걸리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계속 빨간 신호등에 걸리게 됩니다. 어느 시점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놓쳐버리면 그 일로 인하여 인생 속에 터덕거리게 됩니다. 때로는 그 터덕거림이 오래 가기도 하며 혹은 잠시입니다. 문제는 그 터덕거림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터덕거림을 해결하고자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은 분을 통해 터덕거림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염려와 낙심의 포로가 되지 않은 사람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때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성전에서 내 음성을 들으심이여” (시 18:6).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가지 종류의 타이밍을 놓칠 수 있습니다. 취직과 사업, 건강, 결혼 그리고 인생 관계 등의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뒤쳐지기도 하며 또한 원하는 바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타이밍이 우리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 못합니다. 잠시 힘들 수는 있지만 회복의 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항상 빨간 신호등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매번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날이 있지만 때로는 한 번도 빨간 신호등에 걸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타이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타이밍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인생 속에 찾아와 주실 때 우리는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 하나님의 은혜를 방심하거나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우리에게 임할 때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소중함!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성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1)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성령은 목사의 설교, 삶의 경험들, 기도와 하나님의 밀씀 등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삶을 드려야 필요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리키시며 ‘너는 죄인이다. 회개해야 한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즉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와 구주로서 믿게 하십니다. (2)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 가운데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엡 2:1). 죄로 인해 한때 우리의 영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에게 된 성도에게는 그 안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고후 5장 17절은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3)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며,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능히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4)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성도로서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들을 맺게 하십니다. 고전 3:16절이 선포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런 까닭에 성도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통제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 대로 성령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맺어야 할 영적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어지게 됩니다(갈 5:22-23). 성령은 이렇듯 소중하십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인생을 복된 인생, 가치 있는 인생 그리고 멋진 인생으로 세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무너진 인생이 세워지게 되며, 실패의 인생이 성공의 인생으로 바꾸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받게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택해주시고 그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그의 자녀로서 먼저 택해주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자녀되게 하셨고, 또한 사랑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애굽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건져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광야 생활 도중에 그를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 등을 통해 보호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죄의 권세로부터 건져내 주시고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 속에 여러가지 모양들의 삶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의 내용들을 사용하셔서 인생 속에 그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요셉이 어떤 환경 속에 있었어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그의 인생이 결국에는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 속에 어려움을 만난 것은 이 세상이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생의 풍랑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풍랑을 통하여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신앙은 모험이요, 도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눈앞의 환경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니 능히 그 땅들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안 돼’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믿음 생활을 접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낙심과 절망의 포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보살펴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7,500만 명의 아까운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전쟁 비용이 대략 4조 5,000 억 내지 5조 달러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365일 내내 쉬지 않고 계속 되는 전쟁이 있습니다. 그 전쟁에 지출된 비용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비용보다 몇 배 이상 더 많은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망자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이 전쟁은 ‘살과의 전쟁’ 입니다. 즉 ‘다이어트 전쟁’ 입니다. 비만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소화불량, 관절염,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 등등입니다. ‘다이어트 전쟁’은 ‘생존 위협’의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싸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동네 한 바퀴도 돌아보고, 피트니스 센터에 열심히 다녀봅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먹는 것을 참지 못해 여전히 이 싸움에서 매번 지고 맙니다. 그래서 허위 광고에 넘어가 비싼 약들에 의존해 봅니다. 참으로 하루 하루가 지옥입니다. 참으로 ‘다이어트 전쟁’이 이기기에 힘든 것은 신기하게도 살찌는 음식을 다 맛이 기가 막힙니다. 건강을 위해 먹지 말라는 음식은 전부 손이 저절로 가는 음식입니다. 잠자리 들기 전에 먹고 싶은 야식은 환상적으로 맛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백 번 싸우면 백 번 지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매일 영적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다이어트 전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살과의 전쟁’은 최악으로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고 말지만 ‘영적 전쟁’은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성령을 좇아 살아가야 하는 신분이지만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게 만드는 ‘유혹의 음식물’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살찌게 하는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것처럼 성령을 거슬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영적 음식’은 희한하게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릴 정도로 매력이 흘러 넘칩니다. 우리 영을 죽이는 음식은 우리 힘으로 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영적 다이어트를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구별되고 흠 없는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예배의 그림자였던 구약 제사는 반드시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은 구별되고 흠 없는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받으실 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물질(제물) 둘 다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물질은 구별되고 흠이 없어야만 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예배 역시 마음과 물질이 함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물질은 구별되고 흠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결코 받으시지 않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헌금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헌금에 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돈 없으면 교회 생활도 할 수 없다’, ‘믿음 생활도 돈이 있어야 한다’, ‘내가 피 땀 흘려 번 돈인데 먹고 살아야 신앙 생활도 할 수 있는데 꼭 십일조를 해야 돼’ 등등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전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헌금 생활은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헌금 생활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동시에 헌금은 이미 받았거나 지금 받고 있는 복에 대한 감사 고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고, 그 중의 십 분의 일을 구별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더 큰 복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과 무지한 목회자들이 십일조는 구약 율법이라며 거부하며, 또한 ‘억지로 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내 세워 헌금 생활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연약한 성도를 실족하게 하는 하나님께로 무서운 책망을 받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헌금 생활(십일조)은 물론 헌금을 드리는 마음까지 중요시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물질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 삶의 십일조 등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온전함을 가름하는 것은 헌금 생활에 있습니다. 나의 헌금 생활이 내 신앙의 수준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과 물질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 교묘하게 섞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 본인은 알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구별되고 흠 없는 (정직한) 헌금이 드려져야 합니다.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보내심을 입은 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통해 그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그의 백성을 그의 교회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문을 열게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명령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 선교를 위해 보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성령의 보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관심은 전도 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갈 때 그 일을 방해하는 세력에 있는데 그것은 마귀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마귀가 마술사 엘루마를 통해 그들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울은 엘루마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그를 꾸짖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그를 대적했습니다. 그러자 엘루마는 바울이 선포한 대로 맹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는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이지 겁을 먹고 살아가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내게 있는 권능과 권세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는 나의 삶을 방해하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는 반드시 도망을 치게 됩니다(약 4:7).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을 막는 악한 영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에 대하여, 기도를 방해하며 마음 속에 염려와 근심을 주는 악한 영에 대하여 성령께서 주신 권능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마귀는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성령 충만 하여 마구의 종이었던 엘루마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니 엘루마가 맹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본 서기오 바울은 그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보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세상 삶이 힘들고 분주하다 할지라도 성령의 보내심을 입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귀한 사명을 위해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보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흙탕물이 담긴 컵을 들고 온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더러운 물을 어떻게 맑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흙을 건져내려고 하시겠죠?’ 말을 마친 사람은 열심히 흙을 건져냈지만 물은 여전히 더러웠습니다. 오히려 맑은 물만 흘러내려 물은 더욱 더러워졌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께 이 더러운 물을 맑게 하는 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맑은 물을 가지고 와서 그 맑은 물을 흙탕물이 담긴 컵에다 계속 붓자 흙탕물이 차고 넘치기를 반복하면서 물이 점점 맑아졌습니다. 이제 맑아진 물컵을 들고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컵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 나쁜 일은 지우려고 노력을 해도 계속해서 떠오를 뿐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기억을 좋은 생각과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 나쁜 일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 욕심들 그리고 정욕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들을 아무리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 좌절하게 되며 의기소침하게 되어 신앙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흙탕물이 담긴 컵에 맑은 물을 계속해서 붓듯이 긍정적인 생각들과 신령한 생각들을 우리 마음 속에 채워야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늘 가까이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흙탕물과 같은 생각을 버리도록 힘을 주십니다. 또한 마땅히 품어야 할 생각들로 채워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며, 의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승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게 하며, 영원한 상급,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누리게 하는 복된 삶은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훈련입니다. 훈련이 없는 선수는 결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듯이 신앙의 훈련을 갖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더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