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참 교회의 모습 (2)
사람이 인격과 품격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 역시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참된 교회의 모습을 안디옥 교회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3)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한 엄마의 돌봄을 매우 단순하며 반복된 일들이지만 그것은 실상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돌봄이 자녀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신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어서 시시하게 보여지고 또한 여겨집니다. 하지만 온 맘을 다해 예배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좋은 성도, 좋은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내가 지체로서 있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또한 내 교회입니다. 종의 의식과 주인의 의식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봉사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성도 그리고 교회가 참된 성도, 참된 교회 입니다. (4) 교회는 나의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매우 소중한 일꾼들이어서 놓칠 수 없는 교회의 소중한 자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들을 선교지로 파송하게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그런 성령님의 뜻에 순종을 했습니다. 신앙은 나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 뿐이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시며 그들에게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소중한 것입니다. 왜 그런 명령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결국 하나님마저도 버리게 됩니다. 성도는 구별된 신분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별된 신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나의 소중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베다니 촌 마리아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주었습니다. 참된 교회는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을 가진 교회 입니다. 또한 참된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모습을 갖고 있습니까?
2025
사랑도 심은 대로 거둔다!
<사랑도 심은 대로 거둔다> 라는 제목을 가진 글 내용입니다. “뻐꾸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슬피 울고 있었다. 그대 옆가지에 앉아있던 비둘기가 물었다. ‘왜 그리 슬피 우십니까? 배가 고프신 가요?’ 뻐꾸기는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내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자녀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을 정말 몰랐어요. 노년이 너무 쓸쓸하군요.’ 비둘기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 언제 아기를 낳으셨나요? 둥지에 알을 품고 오랫동안 앉아있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요.’ 뻐꾸기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화창한 날씨에 컴컴한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알들을 모두 다른 새집에 넣어놓고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노래를 불렀답니다.’비둘기가 말했습니다. ‘참 욕심도 많군요. 심은 것도 없이 무엇을 바라나요?’ 자녀들을 위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노후에 자녀들이 잘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사랑도 심은 대로 거둔다.” 성경은 선포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인생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믿음을 심으면 믿음의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게 됩니다. 소망을 심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기도를 심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위한 섬김을 심으면 건강의 복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복을 거두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육체의 욕심을 위해 심으면 헛된 삶을 거두게 됩니다. 우상을 섬기게 되면 영원한 멸망의 삶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하는 지에 관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씨를 심든지 심자 마자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반드시 일정 기간이 지나야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좋은 것이든지 혹은 나쁜 것이든지 간에 그 열매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내가 좋은 열매가 곧 보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또한 나쁜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전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2025
참된 교회의 모습(1)
성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해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1) 안디옥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차별이 없는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 입니다. 비록 다른 배경과 출신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 2:17-19).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대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안디옥 교회는 편견과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한 마음과 한 사랑으로 함께 뜻을 합쳐 서로 서로를 섬겼습니다. (2)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옵니다. 믿음의 성장합니다. 복의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었던 것은 그들이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묵상하며 살아갈 때 믿음과 교회 생활이 건강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켈리 선교사님과 미국 내 부흥을 가져왔던 무디 목사님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데에 전력을 다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주변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신앙이 약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거룩한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배우는 데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에 걸맞은 성도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산 바 된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값어치에 맞는 성도요 그리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025
기도의 능력
초대 교회는 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성도는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신학자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는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전능이 연결되는 고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속의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문제와 위기를 만났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며,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 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 주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야고보는 선포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성도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며,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인생 회복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무서운 핍박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모여서 함께 합심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오순절 날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에 잡혔을,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무서운 핍박을 이기게 했습니다. 마귀는 흩어지게 합니다. 육신의 편리함에 머물게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며, 또한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에 전심으로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3) 기도는 정확한 때에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고자 하려는 “그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그를 건져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없다고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날 밤에” 교회의 기도에 응답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일을 행하시며, 성취하시며 그리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쉬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 즉 하나님의 구원은 “그 전날 밤” 즉 가장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2025
진실한 삶의 모습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나 구주 위해 살리라 내 기쁨 한량없으리 내 갈 길 인도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진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진실한 사람은 허심탄회하고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며,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특별히 극히 사소한 일에도 성도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타협하게 되면 큰 일에도 타협하게 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3). 오직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일에 충성’하게 됩니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결국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아 2:15)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진실된 신앙과 삶을 허무는 여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과 삶이 건강하게 되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스스로 정직해야 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말이 진심이었는지, 내 행동이 누군가를 속이거나 감추려는 것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2)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두려움보다 진실을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을 결국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4) 타인을 배려하는 진실이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되 상대의 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따뜻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말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2025
하나보다는 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섬기는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상급이 결정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상급이 결정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말과 생각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역시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우리들이 행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속의 바나바는 이런 일에 우리의 모델이 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보낸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온 맘으로 안디옥 교회를 섬겼습니다. 에베소서 2장 21절은 성도는 교회는 이루는 한 몸으로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에 풍성한 구원의 열매들이 맺어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서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지며 또한 부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에게 세워 주신 일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섬김이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베다니 촌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려 부었을 때 제자들이 그런 그녀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 26:10)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온 맘으로 예수님을 섬겼을 때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 준비를 위함 인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섬김이 우리도 모른 채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며 또한 생각치도 못한 훨씬 크고 가치 있는 하나님의 선한 일로 드러나게 됩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방 선교의 문이 열렸고, 사도 바울이 그 이방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사도 바울을 찾아 가서 그를 동역자로 삼고 안디옥 교회를 섬겼습니다. 두 사람이 합력하여 교회를 섬기자 안디옥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라는 정체성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큰 의미를 드러냅니다. 바울과 바나나의 협력 섬김이 교회 성장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이라는 말이 불신자들로부터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2025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절박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믿음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성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기 종종 실패의 자리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그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의 인생은 17살부터 30살까지 실패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단 한 번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낮은 자리 그리고 힘든 자리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울 왕이 왜 망했습니까? 제사장 사무엘이 오지 않자 오직 제사장만이 드리는 제사를 본인이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무너진 것입니다. 사람의 눈 혹은 세상이 말하는 실패는 하나님 편에서는 실패가 아니라 내 믿음을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인내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실패와 어려움의 시간을 만나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리고 잠잠히 하나님의 손이 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인내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자리를 통해 우리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도의 강점은 ‘성령’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들이 우리를 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원하지 않는 상황과 처지에 이르게 되면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입니다.
2025
주의 손이 함께 하시니
사람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인생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 인생이 세워지게 됩니다. 주님이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구원이 삶 속에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무서운 핍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전파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상황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 때문에 세상에 끌려가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세상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그의 손을 펼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인생이 끝난 것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실상 하나님의 섭리로 인함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핍박과 박해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 속에 함께 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방팔방으로 전파되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그들의 인생이 가장 값진 인생이요, 복된 인생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주의 손이 우리 인생 속에 함께하시면 우리 인생이 찬란한 별처럼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아픔과 상처투성 일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실망과 아픔을 겪는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의도된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잠시 그런 인생 속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어떤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안에 보배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질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 시키십니다.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시고자 함입니다. 능력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인생 속에 주의 손이 함께 하시니 하나님의 구원이 인생 속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2025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로 알고 있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그 영원함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이 세상 삶에 목 매달리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 것들에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두고 살아갑니다.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탐욕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엔 탐욕과 욕망의 포로의 삶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눈앞의 이익과 자신만의 이익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삶이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삶 속에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인생은 그 끝이 영원한 멸망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이 땅 위에의 삶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삶이 영원한 삶에 접속되어 있음을 깨닫고 인생의 주인이시며,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인생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닫게 되어 영원한 삶에 합당한 삶을 이 땅 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악 된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 세상이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고자 애쓰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보다 눈앞의 숫자와 조건 그리고 형편에 더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갑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보다는 조건과 자신의 유익을 따르게 됩니다. 마치 나의 계산과 이익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멋진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틀린 줄 알면서도 틀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현실 모습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믿음의 자리 그리고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순간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며 또한 성령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계십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25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2)
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의 나라를 세워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팔레스타인 지방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었습니다. 그 첫 작업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쓰임을 받습니까? 첫째는 경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하나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을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힘쓰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셌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 하나님의 기적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불순종은 교만이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불순종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또한 거짓이 없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뜻과 권능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구원이 이루어지며 그리고 그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래서 그의 기적들이 나타나게 하시며, 복을 선포하시며 그리고 은혜의 생수들이 흘러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사람이 그런 복들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런 복들의 통로가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그리고 기도에 전혀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