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다스리시는데 그의 약속의 복으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본문 말씀은 한 가지 진리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어느 시점에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자리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으로 인해 모든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 노아에게 이렇게 복을 선포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1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노아에게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막길을 가는 것입니다. 수시로 지형이 바꿔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 역시 그러합니다. 그래서 인생 지도보다는 인생 나침반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 만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노아에게 복을 선포하신 그의 말씀을 통해 또 하나의 진리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는 우리가 겪는 고난의 한계까지도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노아가 상실과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선포하셔서 더 풍성한 것들로 그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새로운 장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노아를 다스리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지라도 어느 시점에 상실과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건강, 물질, 인간 관계, 가정, 직장과 사업장 등등. 성도는 이런 경우에 근심과 낙심의 포로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노아의 인생을 회복시킨 하나님이 우리 인생 역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가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생육하게 하시며, 번성하게 하시며 그리고 땅에 충만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마르지 않습니다. 비록 상실의 자리에 있게 된다 할지라도 그의 약속의 시간 속에서 인생이 회복이 되는 하나님의 손길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보다 더 평안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홍수 심판 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그들 밖에 없으므로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이런 노아에게 하나님이 선포하십니다.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2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복을 선포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믿음으로 날마다 선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역시 고난에 순종하심으로 만 주의 주, 만 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구원의 주인공이 됩니다.
2026
기다림의 신앙(2)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지 7일 후에 홍수가 터졌으니 노아는 방주 안에서 382일을 보낸 셈입니다. 본문 말씀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니 노아가 방주로부터 나왔습니다. 노아는 물이 걷힌 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물이 걷힌 지 56일이나 지나서 그는 방주로부터 나왔습니다. 방주 안에 오랫동안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며 힘들었겠습니까?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가보자고 얼마나 자주 성화를 내겠습니까?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방주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의 스케줄을 따라 일하하시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표대로 혹은 우리 시간을 따라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심과 염려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 방식을 좆아갑니다. 세상의 풍속과 관습 그리고 세상 방식과 흐름을 좇아 살아갑니다. 자신을 인생의 주인과 신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있느냐 혹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노아처럼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자 한다면 그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지 전에 우리를 그의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연단의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연단의 시간은 ‘기다림’ 입니다. 성도는 ‘기다림의 여정’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눈앞의 환경과 상황이 우리를 급한 마음으로 몰아내도 우리 뜻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당장’의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직’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기에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10:23).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이나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인생 기다림의 여정에서 걸어가야 하는 바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인생 속에 많은 바람들이 불어오지만 그 바람대로 살아가지 말고 마땅히 가야 할 방향으로 돛을 달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의 돛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4,5). 성도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볼 때까지 불평과 원망으로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게 되며,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노아가 방주 속에 382일 동안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에 두십니다.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에 하나님의 구원이 보이지 않아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2026
기다림의 신앙(2)
인생 속에는 수많은 기다림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신앙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더디 있게 되면 의심과 염려가 믿음을 흔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서 일년 10일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홍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이 기쁨과 감격이 있었겠지만 긴 시간 동안 방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여간 고욕이 아니었을 겁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중에 불평과 원망 가운데 수많은 죄를 범했습니까? 그것은 광야 생활 중에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이 그들에게 금방 안겨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애굽의 문화, 문명, 관습 그리고 신앙 등의 영향을 받고 살았습니다. 순수한 금을 얻기 위해서는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이 제거되어야만 하듯이 그들 역시 믿음의 순수성을 위해 광야라는 용광로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즉 연단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연단의 시간이 ‘기다림’ 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살다 보면 구원의 감격과 기쁨, 은혜의 감동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배, 기도 그리고 섬김 등으로 편안한 삶과 육신의 만족을 기대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믿음이 흔들리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제 ‘믿음의 싸움’ 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싸움’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기다림은 끝이 반드시 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보통 곤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본문 말씀 1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들과 가축을 기억하사.” “기억하사”의 히브리어는 ‘자카르’인데 ‘마음 속에 깊이 새겨 늘 기억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그런 마음을 갖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기다람의 신앙’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과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천만 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3:3,4). 기가막힌 상황 속에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고 선포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신앙’ 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는 ‘기다림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낙심과 절망이 찾아오지만 그것들의 포로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을 믿고 그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노아가 비록 방주 안에서 1년 10일을 보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니 바람을 불게 하여 물이 마르게 하셨습니다.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믿음의 여정에는 기다림의 장소와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의 장소와 시간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026
작은 일에 충성하라!
사람이 넘어질 때는 큰 바위 때문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합니다. 작으니까 가볍게 여길 수도 있고 아니면 작으니까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반면에 큰 바위는 눈에 금방 띄기 때문에 사전에 조심을 하게 되어 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경고의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15).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5).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보다 더욱 해롭게 하느니라” (전 10:1). 어느 개그맨이 이런 멘트를 쳐서 유명해졌는데 그것은 “그 까이 것 대충” 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사소한 것 혹은 작은 것을 가볍게 여겨서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뭐 별일 있겠어?’, ‘그 정도는 괜찮아!’. 하지만 성경이 경고한 대로 신앙은 사소한 것에 넘어지게 됩니다. ‘한 두 번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별 일 있겠어’, ‘기도 좀 열심히 안 한다고 큰 일이 나겠어’, ‘대충 교회 생활을 한다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거야’ 등등입니다. 알코올 중독 혹은 도박 중독 등에 빠진 사람들의 시작은 극히 작은 시작입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혹은 재미 삼아 조금만 해 보지 뭐 식으로 시작을 했다가 결국 인생을 망치게 하는 중독에 빠지고 말게 됩니다. 지혜로운 신앙인은 작은 것의 위험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평소에 무시를 하다가 나중에는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형편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주일 성수’를 그렇게 권면을 해도 세상 일에 흠뻑 빠져서 살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다가 막상 할 수 없게 되어 봉사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이 선포한 대로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사소한 신앙의 게으름과 방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날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