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조급함의 실패!
> 세상이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급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조급함은 인생의 방해물이며 또한 실패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은 조급함이 가져다 준 실패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옴으로 인해 사라는 여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보고자 했습니다. 사라 입장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며, 지혜로운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갈이 임신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그 가정에 행복이 임하기 보다는 갈등, 시기, 질투, 미움과 싸움이 찾아왔습니다. 조급함이 가져다 준 실패입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입니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 69:3) 라고 말할 상황이 찾아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인생을 짓누를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만 응답이 바로 오지 않을 때 우리는 영혼의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눈앞의 상황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조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라처럼 세상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우리 생각에 아무리 옳다고 판단이 되어도 , 세상 관례로 보면 당연하게 여겨져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좋은 것도 그리고 옳은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자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갈등과 문제만이 그 가정에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십니다. 믿음 생활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얻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추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요셉은 14년을 기다렸고, 모세는 4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도는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급함은 불평과 원망, 낙심과 불신을 가져와서 인생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기다림은 모든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기 위한 과정입니다. 인생 중에는 ‘낙심과 고통의 토요일’ 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부활의 주일’이 오게 됩니다. 생산 능력을 잃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난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상황이 조급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지라도 눈을 들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나님은 기짓말도 안 하시거니와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조급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길 혹은 나의 길!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그가 왕이 되기 전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열 지파를 주어 왕으로 삼겠다는 예언을 들었습니다(왕상 11:31).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왕이 되게 하셨고, 그 사실을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이 죄악을 저지를 때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그들이 ‘여호보암의 길로 행하였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로보암은 ‘죄의 대명사’ 였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 비록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대로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지내려 가게 되면 그들의 마음이 남 왕국 르호보암 왕으로 향하게 될 까봐 일부러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고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당들을 지어서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으로 삼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우상 숭배의 죄에 빠뜨리게 한 장본인이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성경은 여로보암의 죄에 대하여 언급할 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여로보암이 살았어야 했는데 그는 자신의 길을 좇아 살아갔던 것입니다. 세상(마귀)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을 걸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범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엡 2:10).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육신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욕망을 좇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길을 걷는 신분입니다.
2026
두려워 말라!
두려움 중에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여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절). 우리가 두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 왜요’라는 질문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누구이신 지 말씀하십니다. 두려움 중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두려움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구이신 지를 깨닫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아빠, 엄마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부모를 믿고 살아갑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나보다 강하시고, 나는 부족하지만 모든 것에 풍족하시며, 나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그의 방패요, 큰 상급이심을 드러내고, 그에 합당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별처럼 많는 자손들을 갖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으므로 엘레에셀을 그의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만이 그에게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어떤 한계와 선을 그어 놓고 살아갑니다. 마치 지금의 내 인생이 최선인 것처럼 여기며 내 힘과 지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한 빅피쳐가 있었습니다. 그를 복으로 삼으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남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니 자신의 한계가 보여져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는데 믿음의 눈을 갖게 되니 그가 별처럼 많은 자손들을 갖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그는 하나님의 복의 되었으며 또한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영적 비결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했습니다. “소년 다윗과 골리앗 장군, 누가 봐도 다윗이 진다. 하나님과 골리엇 장군, 누가 봐도 하나님이 이긴다. 내가 싸워야 할 자리에 하나님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인생 싸움을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네 인생의 방패, 내 인생의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두려움이 찾아올 때 ‘왜’ 라는 질문대신에 내 인생 속에 방패이시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생의 염려와 두려움은 마치 쥐처럼 삶의 중요한 부분을 갉아먹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가져다주는 염려와 두려움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살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자리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염려와 두려움의 자리에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목동 다윗과 양치기 모세를 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2026
인생 승리의 비결
아브라함은 싸움에서 승리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다 찾아 왔습니다. 성도는 매일이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전쟁에서 승리하여 아브라함처럼 내 인생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회복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의 아브라함의 승리를 살펴서 인생 승리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1) 인생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갈 때 이루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20절). 아브라함은 그 선포를 들었을 때 그에게 십일조를 내었습니다. 아는 멜기세덱의 선포를 인정한 것입니다.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수고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인생의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아브라함처럼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 속에 부어지는 그의 은혜, 그의 도우심 그리고 그의 공급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한 대로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열매를 누리게 되는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인함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겉으로는 우리기 치열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하게 보여지지만 실상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 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십일조의 삶은 이런 믿음의 증거입니다. (2) 인생 승리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소돔 왕이 빼앗긴 물품들을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할 때 아브라함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23절), 인생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재물을 위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롯의 구원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과 예상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으로 얼마든지 승리를 할 수 있으니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것들을 의존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롯의 인생은 실패와 빈 손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복들로 채워졌습니다. 성도는 거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새와 들의 풀꽃도 돌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만 계시면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신앙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뿐이 없는 아들도 우리를 위해 주셨는데 우리를 위해 그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하나님만 전부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