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하게 하는 사람!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 따라옵니다. 따라서 ‘주어진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느헤미야입니다. 그에 대한 평판은 ‘형통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1)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조국의 형편을 들은 느헤미야는 염려와 좌절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기도한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을 가게 되었습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성도는 외적 환경으로 인해 염려와 낙심의 포로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함으로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사명감을 갖고 헌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받은 사명에 대하여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붙잡고 그 사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일부러 예루살렘에 가서 12년 동안 헌신을 했습니다. 주변 많은 사람들로부터 모함, 비방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의 사명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 사명을 받은 신분의 사람입니다. 성도로서, 직분자로서 그리고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사명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이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합니다. (3) 일이 이루기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많은 방해와 위협들이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교회의 지체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로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의 선하신 일들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도는 불발탄이 아니라 폭탄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그 일이 이루기까지 힘써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을 끝까지 살아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흥왕 하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나로 인해 가정,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가 형통하게 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기도, 사명에 대한 헌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삶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게 됩니다.

들으라!

<들으라>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새 세대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다시 선포하면서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선포합니다. “들으라”는 히브리어로 ‘쉐마’ 인데 단순히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듣고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4절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하는 가나안에는 우상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각 민족들이 각자의 신들을 섬기며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그런 우상들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무언가를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간교한 지라 우상을 우상으로 보이지 않게 합니다. 겉으로는 사랑, 돈, 성공, 권력과 명예 등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들이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준다고 믿으며 그것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살아갑니다. 자연스럽게 이것들은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다”고 말 합니다. 이런 우상 숭배의 삶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자, 위로자와 피난처 그리고 상급이심을 믿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거짓 신들을 쫓아내고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까? 우리 생각과 의지 전체로, 나의 모든 것으로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중대하고 의미가 있는 것들 전부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사랑의 뿌리라면, 형제를 위한 사랑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사랑에 멈추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성도가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순종의 사람!

신앙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믿음은 순종이며, 순종이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항상 요구하시는 것이 ‘청종하라’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지 혹은 안 믿는지, 그를 사랑하는지 혹은 사랑하지 않는지는 순종을 통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구원을 보는 길은 순종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기적 그리고 도우심 등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기적과 복을 가져오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리니”(신 7:12,13).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 11:27,28).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명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며,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딜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주의 종의 권면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불순종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듯이 교만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식대로 믿을 거야’의 생각은 마귀가 심어 준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받는데 큰 장애물이 되고 맙니다. 주의 종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권면에 순종하는 겸손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만족을 연습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버리고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들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그들이 없는 것과 누리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불만족의 삶을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인생길을 광야 길을 걷는 것과 같아서 불만족이 우리 마음 속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불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을 무너뜨립니다. 인생 도둑과 같습니다. 반드시 물리쳐야 할 적입니다. 불만족의 삶을 이겨내려면 만족하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만족을 연습하는 삶은 우리에게 불만족을 주는 두 개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는, 비교 의식이요, 다른 하나는 경쟁 의식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이미 있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사람의 인생 소유물에 마음을 빼앗기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삶을 살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지 못한 불만족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풍부와 비천, 배부름과 배고픔. 이런 인생은 누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정해진 법칙입니다. 로마 감옥에 있었던 사도 바울은 그의 앞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0).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입은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갖 위협과 핍박을 받았지만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전할 수 있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만족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만족으로 삼고 살아가니 그 어떤 상황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기가 막힌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만족의 비결은 하나님을 만족으로 삼은 데에 있었습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내용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비교하고 있으면 우리 인생은 멀리 갈 수 없습니다.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고 바울처럼 예수님을 인생의 만족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만족을 연습하는 삶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 하나님만을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운전하는 법을 모르면 운전을 할 수 없고, 법을 모르고 운전을 하면 위험할 수 있다. 원하는 곳에 가려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 인생과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법(law/rule)이 있고, 식(mode)이 있고, 길(way)이 있다. 그 범과 식과 길을 알면 인생과 세상이 쉬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생과 세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 법과 식과 길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법과 식과 길은 우리 인생과 세상을 만드시고 창조하신 분이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게 하나님의 법이고 뜻이고 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삶의 법을 찾아야 한다. 식을 찾아야 한다. 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삶의 법을 찾을 수 있고, 식을 찾을 수 있고, 길을 찾을 수 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길을 알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길을 모르면 아무리 가까워도 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 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인생길이 힘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인생길이 편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그 길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그리스도인조차 눈앞의 세상이 전부로 알고 살아갑니다. 천국이란 단어를 수없이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천국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령한 것보다는 세상적인 것들에 매력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믿음의 부를 사모하기 보다는 세상의 부를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나의 땀과 수고로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 인색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에는 아낌없이 펑펑 씁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리저리 계산을 하며 따지지만 자신을 위한 일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성도는 물질, 시간, 재능 그리고 건강 등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6). 하나님 앞에 우리 것들을 드리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복들을 받고자 한다면 성도는 제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야고보는 성도가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성도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영적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1) 제대로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에 적용되는 분별력’, ‘하나님의 뜻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회복을 약속하셨을 때 (사 51:1,4) “내게 들을지어다”, “내게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가져야 할 지혜는 ‘시험과 삶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올바르게 선택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영적 통찰력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복들과 현실 사이에는 깊은 절벽이 있습니다. 현실과 약속의 복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좌절합니다. 그래서 염려와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성도는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약속의 복과 현실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 속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이 좋게 되어 서가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막과 같은 인생이 에덴으로 바뀌게 되는 시작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 있습니다. (2) 영적 사시를 버려야 합니다. 영적 사시는 믿음의 눈이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 판단으로 살아갑니다. 상황과 처지에 따라 믿음이 요동을 칩니다. 이런 영적 사시를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의심입니다. 인생 상황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길 때입니다. 우리가 광야 길을 걸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야 신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깨진 돌멩이와 같습니다(사 51:1).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지면 돌멩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깨진 돌멩이 같은 아브라함이 복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성도는 오직 믿음의 두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나의 약점을 다스려라!

이제 2026년 새로운 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누구든지 새해가 되면 ‘한 해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인생 성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성공’ 이라는 용어보다는 ‘승리’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 이기 때문에 성공보다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각자의 강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점과 약점을 양쪽 다 주셨습니다. 약점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강점을 갖고 각자에게 맡겨 주신 일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약점은 마냥 약점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약점이 강점이 되어 승리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국토가 좁습니다. 그리고 전 국토의 5분의 2가 바다보다 낮습니다. ‘hollow land’(낮은 땅)에서 Holand(네덜란드)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땅에 집착하지 않고 약점이 되는 바다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선박들을 많이 건조하여 유럽의 제해권을 장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장소에 관계없는 금융업에 집중했습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이 유럽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강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강점을 찾는 길은 ‘이 일이 즐거운가?’ 그리고 ‘이 일에 열매가 있는가?’ 입니다. 기도가 즐겁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봉사가 즐겁습니까? 누구보다도 열심히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즐거우면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성도는 또한 자신의 약점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승리하는 인생이 되려면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026년에는 강점에 집중하고, 약점을 다스려야 합니다.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선포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복이 되는 삶의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1) 하나님의 복이 되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우상으로 가득 찬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구별된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을 베드로후서 1장 4절이 선포합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의 인생 목적은 ‘거룩’입니다. 세상 방식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마음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삶이 하나님의 복이 되는 비결입니다. (2) 하나님의 복이 되려면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다져진 생활기반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욕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모세, 예레미야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 등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은 쉽지 않은 순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복의 통로가 되었고, 하나님의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복으로 준비하신 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율법책을 …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수 1:7-8). 인생을 살다 보면 낙심과 두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내가 모세를 통해 너희에게 준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가 무엇이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이 법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에 순종할 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 우리가 복이 되려면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은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구원의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조건이 무엇이었나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떠나는 일이었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롯은 의인이었지만 그는 사명을 무시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주신 사명대로 가나안 땅에 머물렀습니다. 복이 되려면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사명자가 복이 됩니다.

2025년 끝자락에서

엊그제 신년 축하 예배를 드린 것 같았는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2025년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그의 손길들과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고 살펴보는 지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을 합니다. 주관적인 생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시라 나 자신이 되어 살아갑니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의 무언가를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만족’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구원해 주시며 친 백성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애굽에서 섬기던 다른 신들을 그들의 신으로 삼았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농경의 신이라 여겨지던 바알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과 보호하심과 위로하심 등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근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분노하게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끊임없는 연단을 받아야만 했으며, 그리고 포로가 되어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2025년 끝자락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혹시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목자가 되어 주셔서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의 은혜를 누렸으면서도 하나님 대신에 이 세상의 무언가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거나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일을 겪게 되는 일은 너무나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을 섬기는 삶을 하나님이 결코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삶은 반드시 우상을 통해 얻어진 것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 라고 하지 말고 진솔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라!

>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약점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진 말씀이 내 형편, 내 상황 그리고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는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믿음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울과 이스라엘 군사들처럼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눈에 보이는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바벨론 포로가 되어 낙심과 절망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9절). 바벨론 제국이 너무나 강력한 힘으로 보여 염려와 낙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풀은 결국 마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모든 육체’는 ‘세상 영광’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제국은 마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넘어서지 못할 것 같은 인생의 장애물도 하나님께서 입김을 한번 푹 불면 시들게 되며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9절). 성도는 낙심하게 만드는 인생의 골리앗, 인생의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1) 능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홍해를 갈라 놓으시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며, 사자의 입을 봉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그리고 죄의 권세, 사망을 깨뜨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 문제가 얼마나 무겁고 크든지 능력의 하나님께서 능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2) 우리의 상급과 보응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목마름과 공허감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상급을 주시며, 또한 보응해 주십니다. 다윗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대적자들보다 높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상급자이십니다. 동시에 대적자를 물리쳐 주시는 보응자 이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 목자이십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존재 합니다. 양은 목자만 있으면 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면 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목자이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며,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시며 그리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