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하나님의 사랑
사랑은 위대합니다.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느 사랑과 견줄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십니다(15절).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셔서 반드시 마귀의 손에서 건져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담의 후손인 우리를 향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막 16:17-18). 마귀는 거짓과 술수로 우리 인생을 어렵게 만들 수는 있지만 결단코 우리를 망하게 하거나 죽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절대로 파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7-39). 우리의 지식과 힘 때문에 우리 기도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권세 때문에 우리 기도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기껏해야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뿐 생명을 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범죄 후에 그들에게 있는 죄의 수치를 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위해 가죽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 가죽 옷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듯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을 받은 성도는 거듭난 영을 더럽게 하는 죄의 권세를 억누르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해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생명의 길로, 복과 은혜를 받는 길로 그리고 그의 상급을 받는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2026
죄가 가져다 준 상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게 되면 상실을 가져오게 됩니다. (1) 죄는 영적 상실을 가져옵니다(8절). 죄를 범한 아담은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숨어야만 했습니다 죄를 범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죄를 범하자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롬 1:21).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죄는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고집과 불순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가 깨져버립니다. 즉 영적 상실 속에 들어가고 맙니다. (2) 죄는 심적 상실을 가져옵니다(10절). 죄가 아담에게 들어오니 그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행복해하며 엄마 곁에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엄마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도망을 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사람도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 심령 안에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 기도와 섬김 속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며,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하며 부담감을 갖게 됩니다. (3) 죄는 사회적 상실을 가져옵니다(12절). 아담이 범죄를 하자 그는 그의 허물을 하나님과 하와 탓으로 돌렸습니다. 죄는 인생 속에서 인간 관계의 상실 즉 사회적 상실을 가져옵니다. 로마서 1장은 죄의 산물을 증거합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수군 수군, 비방 등등”.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대로 부부 생활, 가정 생활, 교회 생활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우리 삶 속에 질서와 조화, 화평과 기쁨이 거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욕심과 욕망을 좇아가게 되면 부부 관계, 가족 관계, 다른 사람 간의 관계 등이 깨져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 속에서 선포한 대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피 값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나태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죄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 속에 상실이 아니라 회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삶 속에 참된 만족이 세워지게 됩니다.
2026
하나님 은혜의 법칙
에서와 야곱의 겉 모습의 삶을 보면 야곱은 에서의 뒤꿈치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에서는 능력과 재능이 겸비한 사람인 반면에 야곱은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야곱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 선택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의 일꾼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은 특출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방식과 세상 방식은 정반대이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 힘과 지식과 능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지 기도한다고 안 될 수가 있겠는가? 기도는 무능한 사람들이 하는 무능한 짓이지’ 등으로 기독교 신앙을 폄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이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기분은 ‘능력’이 ‘은혜’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은 성경 전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을 받은 것, 다윗이 언약의 주인공으로 선택을 받은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것,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선택 등등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힘과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며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자기 힘으로 성을 쌓고 그 성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도움을 펼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싫어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은혜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주님, 저는 무능합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모습은 세상 눈으로 보면 무능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상 하나님께는 바로 그 모습이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 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과 회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이 그의 가문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된 것은 오롯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2026
죄의 시작(2)
)> 성도는 죄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죄는 교만과 욕심을 통로로 삼아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5절) 교만과 욕심으로 인해 그만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신분을 잊은 채 창조주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교만과 욕심을 품은 바람에 죄의 포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와의 마음 속에 교만과 욕심이 들어가니 늘 보던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며,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잠언 25장 28절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성벽이 없으면, 성읍이 무너지만 인생의 모든 수고는 헛수고기 되고 맙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교만과 욕심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야만 절재의 열매를 통해 교만과 욕심을 다스리게 됩니다. 영적 암흑기이 사사 시대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마귀는 세상의 잘못된 교훈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라고 유혹을 합니다. 성도는 결단코 이런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만과 탐욕의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4) 죄는 하나님 보다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마귀의 소리를,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하와의 말을 들음으로써 죄를 범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소리 즉 사람의 소리를 좇아 살아갑니다. 베드로가 계집 종의 말을 들을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 답 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좇기보다는 이 세상의 소리를 좇아 갑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달콤한 말로 그리고 마치 인생 성공 비결 같은 소리로 유혹했을 떼 예수님을 환경과 상황에 따라 마귀의 소리를 무시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갔습니다. 마귀는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말 속에 사랑과 관심 그리고 가치가 있는 것이 들어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있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거라면 그 소리를 좇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반드시 들어야 하며 그리고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
죄의 시작(1)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통하여 우리는 죄의 성격을 살펴서 죄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죄는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접근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면 죄의 아름다움에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게 됩니다. 롯이 육신의 눈으로 소돔을 바라봤을 때 애굽 같았으며 에덴 동산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소돔이 멸망을 당할 때 그의 인생 역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 화려하게 포장을 하여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와는 들짐승 중에 가장 영리했고 지혜로웠던 뱀을 통해 마귀가 다가오니 그만 외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여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죄의 실체를 보여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뿌리쳐야 합니다. 대적해야 합니다. (2) 죄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할 때 우리를 삼켜 버립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했습니다. 하와의 말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만과 의심을 보게 됩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와가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과 확실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진실성을 의심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 죄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지 말지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무시하고 이방신들을 우상으로 삼고 사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으며, 온 사방으로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대로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생각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심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밥이 되고 말았으며 아울러 예수님의 경책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2026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그 안에 있는 하나만을 빼놓고 모든 것들을 그들의 임의대로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 즉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마저도 욕심을 냄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말았고 결국 모든 것들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신령한 복들과 이 땅의 기름진 복들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깜부기가 인생의 열매를 헛되게 하지 않도록, 인생의 해충이 인생의 열매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인생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수고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으며 또한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 중에 하나만큼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지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 하신 그 하나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일 성수’입니다. 우리에게 6일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우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의 하루 즉 주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의 영광과 구원을 찬양해야 합니다. 일주일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일을 어기는 것은 탐심이요, 탐욕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나는 ‘십일조’ 입니다. 하나님이 10개 중의 9개를 우리의 것으로 주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하나를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그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신앙을 갖도록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하나’를 드리지 않는 것은 탐심과 탐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소유입니다. 은혜 가운데 주시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신령한 에덴 동산에서 살아가게 되는 영적 비결입니다. 영적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2026
변화 시키는 사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속한 땅 즉 인생을 악평을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속한 땅 즉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가 칭찬을 받는 것은 그가 자신의 사명에 대한 것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행동으로 그의 사명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따라서 각자에게는 부르심의 목적 즉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사명, 야곱은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사명, 요셉은 가문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명, 다윗은 영원한 나라를 세우는 사명,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 열 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사명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사명을 이루는 데에는 충성과 헌신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의 노역을, 요셉은 노예와 죄수의 삶을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무서운 십자가의 처형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명을 이루는 삶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포기한 것들이 더 풍성하게 회복되며 또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사명을 이룬 사람들의 인생 결말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명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명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이 자손들에게 약속의 복들이 부어지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고, 그 열매들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나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명을 이룰 때 일어납니다.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변해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사람을 지으실 때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도록 지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피조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속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 속성입니다 – 영적 존재. 다른 하나는, 지성적 속성입니다 – 지식과 지혜.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 속성입니다 – 거룩함, 진실함, 선함.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1) 그의 대리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가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그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의 무엇인지 이해하라 …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7-20).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를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시도록 즉 하나님의 양광이 선포되어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를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명’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이 자녀 된 도리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주신 사명대로 살아갔을 때 그는 믿음의 조상 그리고 복의 조상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에 따라 가나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명 보다는 “물이 넉넉하니”의 육신의 편리와 만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명을 좇아, 롯은 육신의 만족을 좇아 갔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으며, 다른 한 사람은 패망의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이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성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가 주신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시작 (2)
창세기 1장 1절에서 살펴볼 네 번째 단어는 “창조” 입니다. “창조하시니라”의 히브리어는 ‘바라’ 인데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로 만드는 절대적인 창조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이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인생 안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질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가 순종할 때 이루어 집니다. 성경 속에서 인생을 도둑질 당하고 멸망을 당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뜻과 목적이 항상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지음을 받은 자는 지으신 이의 뜻과 목적을 이루며 또한 지으신 이의 기쁨과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주의 뜻에 순종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아 임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의 선포처럼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 (시 95:1-7) 입니다. 양(성도)은 목자의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그이 경륜과 섭리 속에서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의 첫 번째 창조 사역은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아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셨을 때 그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이시며, 또한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셨을 때 말씀의 권세로써 일하셨습니다. 풍랑을 꾸짖으니 풍랑이 멈췄습니다. 걸어라 말씀하시니 걸었습니다.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일어났습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의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악한 영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을 고칩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 사역이 ‘빛’이었습니다. 흑암으로 가득 찬 땅이 밝아지도록 맨 처음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의 창조를 통해 일차적으로 땅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질서와 조화를 가져오셨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죄와 허물로 인한 영적 어둠에 있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선포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구원의 빛을 비쳐 주십니다. 그래서 생명과 기쁨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거룩하고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도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삶 속에 모시며 살아가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시작
창세기 1장 1절은 짧은 문장이지만 네 가지 단어로 큰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 단어인 “태초에”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생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4장 24절입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인생의 시작과 마감은 하나님이시니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 단어인 “하나님”은 ‘엘로힘’으로서 ‘강하고 전능하신 분’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우리 인생 무릎을 세워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장벽을 넘어가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속에 일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귀가 심어 준 패배의식과 열등감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 단어는 “ 천지” 입니다. 정확한 번역은 “하늘들과 땅” 입니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관찰 가능한 우주 전체의 별의 수는 7조 곱하기 일 백억이라고 합니다. 은하는 태양을 중심으로 9갸의 항성 그리고 수 천억개의 별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런 거대한 은하의 수가 2조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광활한 우주가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의 주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50편 10-12절입니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다 내 것임이로다 …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들이 내 것임이로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소유물의 주인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그의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간, 물질, 재능 그리고 건강 등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인생 시작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강하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