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신앙!
오늘날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가 되면서 가치관들 역시 빠르게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옳다고 여겨진 것들이 지금은 그르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계속 맞는 것도 틀리다고 주장을 하면 진짜로 진짜가 가짜가 되며, 가짜가 진짜로 변해버립니다. 이런 안타까움이 신앙세계 속에서도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이 변했으니 교회도 변해야 된다’, ‘내 신앙이니 간섭하지 말라’, ‘지금의 예배 구조는 이전의 삶에는 맞겠지만 지금의 삶에는 맞지 않다’, ‘십일조 등 헌금 생활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해하신다’ 등등 전통적인 신앙 생활이 마치 잘못된 것처럼 여기면서 오늘날의 상황에 맞춰서 바꾸어져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교회가 한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교회 역시 지금의 상황을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혹은 신앙 생활이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앙 생활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교회는 믿음의 어머니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그리고 성도의 신앙을 길러주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에 두는 교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교회가 되는 것이 교회 본연의 모습이며, 또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하는 신앙 생활, 복음을 전하는 신앙 생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또한 순종하는 신앙 생활 그리고 신앙을 키워 나가는 신앙 생활은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신앙 생활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순종의 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때로는 좁고, 불편하며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보면 손해보는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향 끝에 하나님의 약속의 복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자리요 또한 영원한 복의 자리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순종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2025
사울과 다윗(2)
본문 말씀 속의 사울과 다윗을 통해 인생의 끝마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창대헸지만 그의 끝은 실패였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나중에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을 굳건하게 잘 마쳤습니다. 다윗은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1)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시종일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죽이고자 추격했을 때 다윗은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이기에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삼상 24:6).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면 더 이상 도망자의 삶을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더 이상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늘 먼저 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다윗은 회개를 즉각적으로 행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그를 간접적으로 죽였습니다.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다윗은 밤 늦도록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를 하며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은혜를 구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꾸지람에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남탓으로 돌렸지만 다윗은 즉시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완악하게 굳어지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면 결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우리가 마땅히 달려가야 할 길을 달려가게 됩니다. (3)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법궤가 장막 안에 있는 것이 죄송하게 생각되어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 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 …”(대상 22:14). 여기에서 “환난 중에”의 의미는 ‘극심한 열심으로’ 입니다. 다윗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금 십만 달란트”는 지금으로 매일 일 만불씩 2,000년을 드려도 채워지지 않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엄청난 것들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다윗은 정직함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드렸습니다.
2025
거룩한 아픔
사람은 누구든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내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싸운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한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삶, 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 그리고 이 세상의 무언가를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삶,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지혜와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생명의 길과 복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결단코 우리는 우리 중심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물론 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겠다는 결단, 예수님을 나의 주님과 구주로 받아드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나비가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려면 나무에 고치를 틀고 번데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치 안이 편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꽃, 저 꽃을 오가며 꽃들에게 꽃가루를 전달해 주어 열매를 맺게 해 주는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나의 세계로부터 하나님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갈등과 아픔이 따르지만 그 아픔은 거룩한 아픔입니다.
2025
사울과 다윗(1)
성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생의 끝을 마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성도는 날마다 예수님께 대하여 진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생 초점이 예수님께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보다는 사람의 통치를 원하여 왕을 구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버리고 무기력한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어리석은 생각이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떼를 써서 하나님께서 왕을 갖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과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시키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나약한 사람은 자유 의지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자유 의지를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으로 세워진 왕이 사울 왕입니다. 사울 왕의 초기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울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왕이 된 지 이 년 만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환경과 상황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면 사울 왕의 삶의 내용은 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울 왕은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죄를 범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작 사울 왕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무시하면서도 우리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맘대로 해석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우리 주장과 생각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 왕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허물과 잘못을 지적해 주셨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죄를 정당화했습니다. 믿음은 끝까지 달려가야 하는 길과 같습니다. 멈추거나 이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울 왕이 있다면 쫓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 회개와 그에게 돌아 감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는 비결입니다.
2025
무엇이 먼저입니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인생은 ‘우선 순위’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런데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더 먼저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잃어버리는 인생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처음에는 잘 나가는 듯하지만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믿음 생활 혹은 신앙 생활은 하나님만을 붙드는 것이며 또한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먼저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든 다음에 사람도, 물질도, 건강도 그리고 소원 등을 바르게 붙을 수 있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 문제 해결을 하나님을 제쳐두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온갖 무속적 상담과 비성경적인 철학들이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범람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을 지혜와 방법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인생의 해결자이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간섭하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환경과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망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나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라는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과 징계’도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 표현입니디. “주께 징계하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욥 5:17).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 그의 백성을 아름다운 인생으로 세워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연단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고자 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두는 삶이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등이 그런 연단의 과정을 통해 멋진 인생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성도에게 어려움은 끝이 아닙니다. 무엇을 잃든지, 무슨 어려움을 겪든지, 무슨 답답함이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항상 내 편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2025
별이 빛나는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희락을 주시는데 우리는 욕망의 진흙 파이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도가 추구하고 선택해야 하는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본문은 가나의 혼인 잔치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성도가 가져야 할 참 기쁨이 무엇인지 찾고자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잔치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상징합니다(사 24:11).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포도주 즉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이 기계적이 되며 제도화되는 바람에 기쁨이 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감격이 계속 유지되기가 어렵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우리 인생 속에 새로운 은혜와 기쁨의 포도주가 부어져야 합니다. 인생의 참 기쁨이 회복되려면 첫째로, ‘내게 포도주가 없다’라는 현실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았을 때 그는 죄인이었음을 하나님께 고백을 했습니다(사 6:5). 그의 고백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포도주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에게만 포도주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즉시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포도주가 아닙니다. 행복과 기쁨은 사람과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포도주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장 물이 포도주가 변하기를 원합니다. 당장 나아야 하며, 사업이 잘 돼야 하며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채워야 합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십니다. 성도는 연회장이 아니라 물 떠온 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잔치가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물과 같은 인생을 포도주의 향기의 인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2025
사랑의 놀라운 힘!
영국의 BBC 방송은 20세기 최고의 인간 승리자로 피터 힐을 선정했습니다 헐은 영국의 수영선수로서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습니다. 초등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장 선생님의 대답은 냉랭했습니다. “학부모들의 반대가 워낙 심합니다. 저희들을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때 헐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처음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헐을 보통아이로 키웠습니다. 파티에도 데려가고 모임에도 참석시켰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아들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너는 건강한 사람보다 장점이 많다. 용기를 잃지 말아라.” 피터 헐은 열 살때부터 수영을 배웠습니다. 그는 머리를 움직여 방향을 잡고 팔을 휘저었습니다. 수영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는 맨 꼴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계속 노력을 했습니다. 피터 헐은 88 서울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을 했습니다. 또한 92 바르셀로나 장애인 올림픽에도 출전을 해서 3개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인간 승리자로 선정된 피터 헐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보통사람으로 인정해 준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편견 없는 사랑이 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사랑에는 어떤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좌지우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을 해 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 하든, 어떤 흠이 있든지 그리고 어떤 부족한 점이 있든지 있는 우리를 그대로 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었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습니다. 장래의 우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누군가가 우리의 사랑을 통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 그리고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처럼 편견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세워주게 됩니다.
2025
별이 빛나는 밤에!
다니엘은 어두운 밤과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환상이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다니엘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캄캄한 밤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빛을 필요로 합니다. 어두운 인생길을 환하게 비쳐주는 주님의 빛을 필요로 합니다. 시편 기자가 선포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입니다. 내 길을 환하게 비추는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이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1) 부활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환난이 이스라엘에게 닥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 절). 이와 같이 마지막 때에 큰 고난의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활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은 백성이 깨어나 영생을 받겠고.”하나님은 부활을 성도의 삶에 최종 목적지로, 최고의 상급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부활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부활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이 땅 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듭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듭니다. 부활 신앙을 갖고 있을 때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게 됩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도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활 때에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하여 모두 갚아 주십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캄캄한 밤을 지나가게 합니다. (2) 연단을 통해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장차 있을 연단에 대하여 다니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7절). 그리고 그 연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한다고 했습니다(10절). 우리가 캄캄한 밤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연단의 과정입니다. 이 연단을 통해 우리는 더 거룩한 삶을살아가게 됩니다. 스펄전 목사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얻은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통은 내 집에서 최고의 가구요, 목사의 서재에서 최고의 책이다.” 우리는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을 연단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연단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손을 잡아 주십니다. (3)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야 합니다. 성도는 고난의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리를 주십니다. 사명의 자리에 두십니다. 다니엘에게 바벨론은 캄캄한 밤이지만 그곳에서 빛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은혜의 빛, 말씀의 빛 그리고 사랑의 빛을 비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연단 속에 두는 하나님의 뜻이요, 인도하심 입니다.세상은 밤이지만 우리는 빛입니다.
2025
인생의 타이밍
운전을 하다 보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 자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조금만 멈칫하거나 속도를 낮추다 보면 신호등에 걸리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계속 빨간 신호등에 걸리게 됩니다. 어느 시점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놓쳐버리면 그 일로 인하여 인생 속에 터덕거리게 됩니다. 때로는 그 터덕거림이 오래 가기도 하며 혹은 잠시입니다. 문제는 그 터덕거림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터덕거림을 해결하고자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은 분을 통해 터덕거림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염려와 낙심의 포로가 되지 않은 사람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때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성전에서 내 음성을 들으심이여” (시 18:6).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가지 종류의 타이밍을 놓칠 수 있습니다. 취직과 사업, 건강, 결혼 그리고 인생 관계 등의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뒤쳐지기도 하며 또한 원하는 바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타이밍이 우리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 못합니다. 잠시 힘들 수는 있지만 회복의 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항상 빨간 신호등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매번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날이 있지만 때로는 한 번도 빨간 신호등에 걸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타이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타이밍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인생 속에 찾아와 주실 때 우리는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2). 하나님의 은혜를 방심하거나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우리에게 임할 때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025
성령의 소중함!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성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1)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성령은 목사의 설교, 삶의 경험들, 기도와 하나님의 밀씀 등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삶을 드려야 필요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리키시며 ‘너는 죄인이다. 회개해야 한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즉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와 구주로서 믿게 하십니다. (2)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 가운데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엡 2:1). 죄로 인해 한때 우리의 영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에게 된 성도에게는 그 안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고후 5장 17절은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3)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며,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능히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4)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성도로서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들을 맺게 하십니다. 고전 3:16절이 선포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런 까닭에 성도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통제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 대로 성령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맺어야 할 영적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어지게 됩니다(갈 5:22-23). 성령은 이렇듯 소중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