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조급함의 실패!
> 세상이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급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조급함은 인생의 방해물이며 또한 실패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은 조급함이 가져다 준 실패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옴으로 인해 사라는 여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보고자 했습니다. 사라 입장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며, 지혜로운 행동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갈이 임신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그 가정에 행복이 임하기 보다는 갈등, 시기, 질투, 미움과 싸움이 찾아왔습니다. 조급함이 가져다 준 실패입니다. 우리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입니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 69:3) 라고 말할 상황이 찾아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인생을 짓누를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만 응답이 바로 오지 않을 때 우리는 영혼의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눈앞의 상황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조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라처럼 세상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우리 생각에 아무리 옳다고 판단이 되어도 , 세상 관례로 보면 당연하게 여겨져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은 좋은 것도 그리고 옳은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자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갈등과 문제만이 그 가정에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십니다. 믿음 생활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얻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추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요셉은 14년을 기다렸고, 모세는 4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도는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급함은 불평과 원망, 낙심과 불신을 가져와서 인생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기다림은 모든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기 위한 과정입니다. 인생 중에는 ‘낙심과 고통의 토요일’ 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부활의 주일’이 오게 됩니다. 생산 능력을 잃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난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상황이 조급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지라도 눈을 들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하나님은 기짓말도 안 하시거니와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조급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길 혹은 나의 길!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그가 왕이 되기 전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열 지파를 주어 왕으로 삼겠다는 예언을 들었습니다(왕상 11:31).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왕이 되게 하셨고, 그 사실을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이 죄악을 저지를 때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그들이 ‘여호보암의 길로 행하였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로보암은 ‘죄의 대명사’ 였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 비록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대로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지내려 가게 되면 그들의 마음이 남 왕국 르호보암 왕으로 향하게 될 까봐 일부러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고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당들을 지어서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으로 삼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우상 숭배의 죄에 빠뜨리게 한 장본인이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성경은 여로보암의 죄에 대하여 언급할 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을 좇아 여로보암이 살았어야 했는데 그는 자신의 길을 좇아 살아갔던 것입니다. 세상(마귀)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을 걸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범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은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엡 2:10).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육신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욕망을 좇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길을 걷는 신분입니다.
2026
두려워 말라!
두려움 중에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여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절). 우리가 두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 왜요’라는 질문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누구이신 지 말씀하십니다. 두려움 중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두려움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구이신 지를 깨닫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아빠, 엄마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부모를 믿고 살아갑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나보다 강하시고, 나는 부족하지만 모든 것에 풍족하시며, 나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그의 방패요, 큰 상급이심을 드러내고, 그에 합당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별처럼 많는 자손들을 갖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으므로 엘레에셀을 그의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만이 그에게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어떤 한계와 선을 그어 놓고 살아갑니다. 마치 지금의 내 인생이 최선인 것처럼 여기며 내 힘과 지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한 빅피쳐가 있었습니다. 그를 복으로 삼으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남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니 자신의 한계가 보여져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는데 믿음의 눈을 갖게 되니 그가 별처럼 많은 자손들을 갖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그는 하나님의 복의 되었으며 또한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영적 비결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했습니다. “소년 다윗과 골리앗 장군, 누가 봐도 다윗이 진다. 하나님과 골리엇 장군, 누가 봐도 하나님이 이긴다. 내가 싸워야 할 자리에 하나님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인생 싸움을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네 인생의 방패, 내 인생의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두려움이 찾아올 때 ‘왜’ 라는 질문대신에 내 인생 속에 방패이시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생의 염려와 두려움은 마치 쥐처럼 삶의 중요한 부분을 갉아먹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가져다주는 염려와 두려움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살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자리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염려와 두려움의 자리에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목동 다윗과 양치기 모세를 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2026
인생 승리의 비결
아브라함은 싸움에서 승리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다 찾아 왔습니다. 성도는 매일이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전쟁에서 승리하여 아브라함처럼 내 인생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회복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의 아브라함의 승리를 살펴서 인생 승리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1) 인생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갈 때 이루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20절). 아브라함은 그 선포를 들었을 때 그에게 십일조를 내었습니다. 아는 멜기세덱의 선포를 인정한 것입니다.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수고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인생의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아브라함처럼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 속에 부어지는 그의 은혜, 그의 도우심 그리고 그의 공급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한 대로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열매를 누리게 되는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인함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겉으로는 우리기 치열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하게 보여지지만 실상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 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십일조의 삶은 이런 믿음의 증거입니다. (2) 인생 승리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소돔 왕이 빼앗긴 물품들을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할 때 아브라함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23절), 인생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재물을 위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롯의 구원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과 예상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으로 얼마든지 승리를 할 수 있으니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것들을 의존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롯의 인생은 실패와 빈 손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복들로 채워졌습니다. 성도는 거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새와 들의 풀꽃도 돌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만 계시면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신앙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뿐이 없는 아들도 우리를 위해 주셨는데 우리를 위해 그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하나님만 전부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2026
마땅히 해야 할 싸움
<마땅히 해야 할 싸움> 본문 말씀은 두 종류의 싸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북부 지역의 네 나라의 동맹국들과 남부 지역 다섯 나라의 동맹국들 간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은 권력, 돈 그리고 오기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 통에 인생이 부서진 사람이 있었는데 곧 롯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싸움을 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화려함과 편리함을 좇아 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방법과 지식으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런 그런 롯이 세상 싸움 바람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인생을 도둑질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롯처럼 이 세상 싸움에 빠져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 살지만 성도의 정체성을 깨닫고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전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 속에 있음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을 상대함이라” (에 6:11-12). 또 하나의 싸움은 아브라함이 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 동맹국들끼리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의 결과를 16절이 선포합니다. “다 찾아왔더라.” 성도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누가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육신의 눈으로 애굽에 내려 갔다가 비참한 인생을 만나고 말았는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애굽의 비루한 삶으로부터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롯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체하지 않고 롯을 구하려 싸움에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은 겨우 가신 318명을 데리고 네 나라 동맹국의 군사들과 싸웠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무모한 싸움처럼 보였지만 아브라함은 롯을 사랑했기에 무모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싸움에서 이겨 “다 찾아왔더라”의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을 갖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인생 속의 싸움에서 이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배와 기도 그리고 섬김에 있어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 넘고도 남는 파워를 갖게 합니다. 반면에 사랑하지 않으면 환경과 상황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성도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예배와 섬김 그리고 기도 등을 등한히 하며 세상 싸움에 분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시들었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싸움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승리하게 되어 잃어버린 것을 ‘다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2026
나의 시선을 어디에!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에 따라 성공 인생 혹은 실패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말씀은 두 사람의 시선이 나오고 있습니다. 롯은 그의 시선을 보이는 것에, 완벽한 환경에 그리고 세상의 화려함과 편리함에 두고 살았습니다. 결국 이 시선이 그를 실패의 인생으로 이끌었습니다. 롯이 처음부터 소돔에 가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세상의 화려함과 편안함 그리고 완벽한 환경을 좇아가다 보니 어느새 하나님의 눈에 악한 소돔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선포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눈에 보이는 것이 행복의 조건인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좇아 세상 것들을 좇아갑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교만하거나 혹은 얻지 못하면 열등감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 누구든지 욕심을 좇아 살아가면 그 마지막은 실패요 멸망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것을 좇아가고 있었을 때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가나안 땅”은 물리적인 땅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인 개념 즉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땅이요, 보여주신 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의 눈으로 살아가는 바람에 큰 낭패를 한번 당했습니다. 그는 이 실패의 교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시선을 눈에 보이는 것에, 세상의 화려함과 편리함 그리고 완벽하게 보이는 환경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머문 곳은 롯이 택한 곳에 비교하면 척박한 환경이었고 살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성도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실 거라는 믿음. 비록 내 인생이 황폐하고 메말라서 살기에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그가 보여주시는 길을 순종함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생 속에 간섭하시면 그 인생은 달라지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선포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날 때에 그 곳에 많은 샘물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그 복을 채워주나이다”(85:5,6).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 패배의 인생,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 – 하나님의 구원이 그 인생에 임하면 성공적인 인생, 풍족하고 강한 인생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요셉, 다윗, 롯과 다니엘 등의 인생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 땅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리고 헤브론에 거주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헤브론”은 ‘교통’, ‘친교’의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환경에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소망으로 삼고 오직 눈을 하나님께 두고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복이 되었고, 복의 통로가 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시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2026
끝까지 믿으라!
우리는 하늘로 솟구치는 믿음으로 살다가 때로는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왔으며 또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왜 그가 믿음의 실패를 했습니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눈을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내 눈이 보이는 대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것이 자신의 눈을 우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오자 그는 믿음 보다는 자신의 눈을 의지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그는 비굴하고 비참한 자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가나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의 뜻에 따라 우리를 두신 자리입니다 – 십일조 생활, 예배, 기도 그리고 섬김의 생활, 교회, 가정, 직장과 사업장 등등. 그런데 그 ‘가나안’에 기근 즉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그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눈에 의지하여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 23:19).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의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마귀는 하나님의 복을 빼앗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로 떨어져 나가도록 우리의 가나안에 기근을 가져다줍니다. 나의 눈으로 보면 머물러 있어야 할 가나안이 한탄과 근심의 장소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가나안이 생명의 장소요,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장소 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그러했으며, 다윗의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라를 통해 약속의 씨기 나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라가 바로의 궁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바로로 하여금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떠나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려다가 비참한 인생에 빠지고 말았지만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을 향한 그의 약속을 지키시려고 바로에게 재앙은 내려 사라를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잠언 3장 5-7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다 할지라도 가나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는 길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은 그 어떤 인생 기근보다 더 크십니다. 인생 기근 마저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복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나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섬기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2026
내 인생의 황금기!
리더 코칭인 David Drur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제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제 미래는 더없이 밝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참되며 그 분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저를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고 그분이 주시려는 모든 것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은 제 인생의 황금기
입니다.” 데이빗 드루리가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이 ‘인생의 황금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 사이의 간격 때문에 실망과 좌절의 맛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눈송이 멘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송이가 손에 닿게 되면 금방 녹아버린 것처럼 겁쟁이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마치 패배자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REVEAL Research Project> 가 일천 개가 넘는 교회 조사를 통해 활기가 있는 신앙 혹은 신앙의 황금기를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얼마나 되는지 조사했습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약 11퍼센트의 그리스도인만이 신앙의 황금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수가 약 22억으로 보는데 약 20억의 그리스도인이 무기력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 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애굽(죄의 노예)으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애굽 땅에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로마서 3장 37절이 선포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하나님)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런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툭하면 인생 문제나 장애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아갑니다. 애굽과 가나안 사이의 땅에 발이 묶여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담대 하라’, ‘두려워 말라,’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 두려워하지 않거나 담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우리는 겁을 먹고 사는 신분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살아가는 신분입니다. “담대하라!”
2026
복이 될 지라 (3)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의 복으로 삼아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는 세 번째 영적 비결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3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축복하는 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이요, 복의 통로가 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이 자녀들이 그의 복을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아론 대제사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하게 하셨습니다 (민 6:23-27). 이런 축복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벧전 2:9).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하는 입으로 살아가면 그런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성도는 ‘축복의 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복을 답지 못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는 마음, 가정 그리고 삶 속에 천국을 이루지 못합니다. 성도는 먼저 사랑하는 삶과 용서하는 삶을 살아 가야 합니다. 그런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가 임하게 되며 하나님의 복이 되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사람이 됩니다. 넷째로, 복의 통로가 되려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선포하시니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7절). 하나님의 구원은 차별이나 편견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지만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내 것으로 삼는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복을 자녀들에게 주시지만 모든 사람이 그 복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복을 내 것으로 믿음으로 선포하는 사람이 그 복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내게 선포하신 하나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복을 믿음으로 내 것으로 삼는 고백의 행함이 바로 제단을 쌓는 것 즉 예배 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 하나님은 그를 예배하는 사람에게 그의 좋은 것들로 주십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대하고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동이 바로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바른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복이며, 복의 통로가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된 아브라함처럼 성도라는 정체성을 갖고,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으로 떠나 내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시는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입을 갖고 살아가며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복이요, 복의 통로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026
복이 될 지라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복의 통로로 만드셔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속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려면 우리가 가고 싶은 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땅으로 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선포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성도는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야 합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습니다. 요셉은 그의 인생 속에 수많은 굴곡들이 있었지만 단 한 차례도 그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복의 통로가 되어 그의 가문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속에 들어왔습니다. 홍해 앞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길이 마치 실패와 멸망의 길로 그들에게 보였지만 실상 그 길이 사는 길이었습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시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가장 확실하며,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인생은 광야 길을 걷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나침반과 같아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항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성도로서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복이 되며, 또한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기 전에 이미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일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속에 들어온 것처럼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원 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A.W. 토저 목사님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보다는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이다. 천국의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항해해야 한다. 때로는 순풍이고, 때로는 역풍이 불겠지만 아무튼 항해를 해야 한다. 우리는 돛을 올리고 하나님의 뜻ㅇ르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든지 간에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돛을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는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