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신앙(2)
인생 속에는 수많은 기다림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신앙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더디 있게 되면 의심과 염려가 믿음을 흔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서 일년 10일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홍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이 기쁨과 감격이 있었겠지만 긴 시간 동안 방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여간 고욕이 아니었을 겁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중에 불평과 원망 가운데 수많은 죄를 범했습니까? 그것은 광야 생활 중에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이 그들에게 금방 안겨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애굽의 문화, 문명, 관습 그리고 신앙 등의 영향을 받고 살았습니다. 순수한 금을 얻기 위해서는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이 제거되어야만 하듯이 그들 역시 믿음의 순수성을 위해 광야라는 용광로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즉 연단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연단의 시간이 ‘기다림’ 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살다 보면 구원의 감격과 기쁨, 은혜의 감동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배, 기도 그리고 섬김 등으로 편안한 삶과 육신의 만족을 기대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믿음이 흔들리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제 ‘믿음의 싸움’ 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싸움’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기다림은 끝이 반드시 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서 오래 머물다 보니 보통 곤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본문 말씀 1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들과 가축을 기억하사.” “기억하사”의 히브리어는 ‘자카르’인데 ‘마음 속에 깊이 새겨 늘 기억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 대하여 그런 마음을 갖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기다람의 신앙’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과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천만 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3:3,4). 기가막힌 상황 속에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고 선포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신앙’ 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는 ‘기다림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낙심과 절망이 찾아오지만 그것들의 포로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을 믿고 그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노아가 비록 방주 안에서 1년 10일을 보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니 바람을 불게 하여 물이 마르게 하셨습니다.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믿음의 여정에는 기다림의 장소와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의 장소와 시간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