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나님과 그의 백성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인생을 복된 인생, 가치 있는 인생 그리고 멋진 인생으로 세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무너진 인생이 세워지게 되며, 실패의 인생이 성공의 인생으로 바꾸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받게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택해주시고 그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그의 자녀로서 먼저 택해주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자녀되게 하셨고, 또한 사랑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애굽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건져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광야 생활 도중에 그를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 등을 통해 보호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죄의 권세로부터 건져내 주시고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 속에 여러가지 모양들의 삶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의 내용들을 사용하셔서 인생 속에 그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요셉이 어떤 환경 속에 있었어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그의 인생이 결국에는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 속에 어려움을 만난 것은 이 세상이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생의 풍랑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풍랑을 통하여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신앙은 모험이요, 도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눈앞의 환경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니 능히 그 땅들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안 돼’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믿음 생활을 접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낙심과 절망의 포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보살펴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2025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7,500만 명의 아까운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전쟁 비용이 대략 4조 5,000 억 내지 5조 달러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365일 내내 쉬지 않고 계속 되는 전쟁이 있습니다. 그 전쟁에 지출된 비용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비용보다 몇 배 이상 더 많은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망자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이 전쟁은 ‘살과의 전쟁’ 입니다. 즉 ‘다이어트 전쟁’ 입니다. 비만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소화불량, 관절염,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 등등입니다. ‘다이어트 전쟁’은 ‘생존 위협’의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싸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동네 한 바퀴도 돌아보고, 피트니스 센터에 열심히 다녀봅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먹는 것을 참지 못해 여전히 이 싸움에서 매번 지고 맙니다. 그래서 허위 광고에 넘어가 비싼 약들에 의존해 봅니다. 참으로 하루 하루가 지옥입니다. 참으로 ‘다이어트 전쟁’이 이기기에 힘든 것은 신기하게도 살찌는 음식을 다 맛이 기가 막힙니다. 건강을 위해 먹지 말라는 음식은 전부 손이 저절로 가는 음식입니다. 잠자리 들기 전에 먹고 싶은 야식은 환상적으로 맛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백 번 싸우면 백 번 지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매일 영적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다이어트 전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살과의 전쟁’은 최악으로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고 말지만 ‘영적 전쟁’은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성령을 좇아 살아가야 하는 신분이지만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게 만드는 ‘유혹의 음식물’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살찌게 하는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것처럼 성령을 거슬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영적 음식’은 희한하게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릴 정도로 매력이 흘러 넘칩니다. 우리 영을 죽이는 음식은 우리 힘으로 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영적 다이어트를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2025
구별되고 흠 없는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예배의 그림자였던 구약 제사는 반드시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은 구별되고 흠 없는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받으실 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물질(제물) 둘 다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물질은 구별되고 흠이 없어야만 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예배 역시 마음과 물질이 함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물질은 구별되고 흠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결코 받으시지 않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헌금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헌금에 대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돈 없으면 교회 생활도 할 수 없다’, ‘믿음 생활도 돈이 있어야 한다’, ‘내가 피 땀 흘려 번 돈인데 먹고 살아야 신앙 생활도 할 수 있는데 꼭 십일조를 해야 돼’ 등등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전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헌금 생활은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헌금 생활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동시에 헌금은 이미 받았거나 지금 받고 있는 복에 대한 감사 고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고, 그 중의 십 분의 일을 구별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더 큰 복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과 무지한 목회자들이 십일조는 구약 율법이라며 거부하며, 또한 ‘억지로 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내 세워 헌금 생활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연약한 성도를 실족하게 하는 하나님께로 무서운 책망을 받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헌금 생활(십일조)은 물론 헌금을 드리는 마음까지 중요시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물질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 삶의 십일조 등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온전함을 가름하는 것은 헌금 생활에 있습니다. 나의 헌금 생활이 내 신앙의 수준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과 물질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 교묘하게 섞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 본인은 알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구별되고 흠 없는 (정직한) 헌금이 드려져야 합니다.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2025
보내심을 입은 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통해 그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그의 백성을 그의 교회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문을 열게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명령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 선교를 위해 보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성령의 보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관심은 전도 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갈 때 그 일을 방해하는 세력에 있는데 그것은 마귀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마귀가 마술사 엘루마를 통해 그들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바울은 엘루마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그를 꾸짖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그를 대적했습니다. 그러자 엘루마는 바울이 선포한 대로 맹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는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이지 겁을 먹고 살아가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내게 있는 권능과 권세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는 나의 삶을 방해하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는 반드시 도망을 치게 됩니다(약 4:7).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을 막는 악한 영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에 대하여, 기도를 방해하며 마음 속에 염려와 근심을 주는 악한 영에 대하여 성령께서 주신 권능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마귀는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성령 충만 하여 마구의 종이었던 엘루마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니 엘루마가 맹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본 서기오 바울은 그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보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세상 삶이 힘들고 분주하다 할지라도 성령의 보내심을 입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귀한 사명을 위해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보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2025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흙탕물이 담긴 컵을 들고 온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더러운 물을 어떻게 맑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흙을 건져내려고 하시겠죠?’ 말을 마친 사람은 열심히 흙을 건져냈지만 물은 여전히 더러웠습니다. 오히려 맑은 물만 흘러내려 물은 더욱 더러워졌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께 이 더러운 물을 맑게 하는 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맑은 물을 가지고 와서 그 맑은 물을 흙탕물이 담긴 컵에다 계속 붓자 흙탕물이 차고 넘치기를 반복하면서 물이 점점 맑아졌습니다. 이제 맑아진 물컵을 들고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컵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 나쁜 일은 지우려고 노력을 해도 계속해서 떠오를 뿐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기억을 좋은 생각과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 나쁜 일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 욕심들 그리고 정욕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들을 아무리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 좌절하게 되며 의기소침하게 되어 신앙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흙탕물이 담긴 컵에 맑은 물을 계속해서 붓듯이 긍정적인 생각들과 신령한 생각들을 우리 마음 속에 채워야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늘 가까이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하십니다. 흙탕물과 같은 생각을 버리도록 힘을 주십니다. 또한 마땅히 품어야 할 생각들로 채워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며, 의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승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게 하며, 영원한 상급,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누리게 하는 복된 삶은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훈련입니다. 훈련이 없는 선수는 결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듯이 신앙의 훈련을 갖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더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됩니다.
2025
참 교회의 모습 (2)
사람이 인격과 품격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 역시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참된 교회의 모습을 안디옥 교회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3)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한 엄마의 돌봄을 매우 단순하며 반복된 일들이지만 그것은 실상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돌봄이 자녀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신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어서 시시하게 보여지고 또한 여겨집니다. 하지만 온 맘을 다해 예배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좋은 성도, 좋은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내가 지체로서 있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또한 내 교회입니다. 종의 의식과 주인의 의식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봉사해야 합니다.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성도 그리고 교회가 참된 성도, 참된 교회 입니다. (4) 교회는 나의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매우 소중한 일꾼들이어서 놓칠 수 없는 교회의 소중한 자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들을 선교지로 파송하게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그런 성령님의 뜻에 순종을 했습니다. 신앙은 나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 뿐이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시며 그들에게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첫 열매는 소중한 것입니다. 왜 그런 명령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결국 하나님마저도 버리게 됩니다. 성도는 구별된 신분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별된 신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나의 소중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베다니 촌 마리아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주었습니다. 참된 교회는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을 가진 교회 입니다. 또한 참된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모습을 갖고 있습니까?
2025
사랑도 심은 대로 거둔다!
<사랑도 심은 대로 거둔다> 라는 제목을 가진 글 내용입니다. “뻐꾸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슬피 울고 있었다. 그대 옆가지에 앉아있던 비둘기가 물었다. ‘왜 그리 슬피 우십니까? 배가 고프신 가요?’ 뻐꾸기는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내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자녀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을 정말 몰랐어요. 노년이 너무 쓸쓸하군요.’ 비둘기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 언제 아기를 낳으셨나요? 둥지에 알을 품고 오랫동안 앉아있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요.’ 뻐꾸기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화창한 날씨에 컴컴한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알들을 모두 다른 새집에 넣어놓고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노래를 불렀답니다.’비둘기가 말했습니다. ‘참 욕심도 많군요. 심은 것도 없이 무엇을 바라나요?’ 자녀들을 위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노후에 자녀들이 잘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사랑도 심은 대로 거둔다.” 성경은 선포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인생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믿음을 심으면 믿음의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게 됩니다. 소망을 심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기도를 심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위한 섬김을 심으면 건강의 복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복을 거두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육체의 욕심을 위해 심으면 헛된 삶을 거두게 됩니다. 우상을 섬기게 되면 영원한 멸망의 삶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하는 지에 관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씨를 심든지 심자 마자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반드시 일정 기간이 지나야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좋은 것이든지 혹은 나쁜 것이든지 간에 그 열매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내가 좋은 열매가 곧 보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또한 나쁜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전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2025
참된 교회의 모습(1)
성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해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1) 안디옥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차별이 없는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 입니다. 비록 다른 배경과 출신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 2:17-19).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대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안디옥 교회는 편견과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한 마음과 한 사랑으로 함께 뜻을 합쳐 서로 서로를 섬겼습니다. (2)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옵니다. 믿음의 성장합니다. 복의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었던 것은 그들이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묵상하며 살아갈 때 믿음과 교회 생활이 건강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켈리 선교사님과 미국 내 부흥을 가져왔던 무디 목사님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데에 전력을 다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주변 사람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신앙이 약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거룩한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배우는 데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에 걸맞은 성도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산 바 된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값어치에 맞는 성도요 그리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025
기도의 능력
초대 교회는 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성도는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신학자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는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전능이 연결되는 고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속의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문제와 위기를 만났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며,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 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 주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야고보는 선포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성도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며,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인생 회복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무서운 핍박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모여서 함께 합심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오순절 날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에 잡혔을,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무서운 핍박을 이기게 했습니다. 마귀는 흩어지게 합니다. 육신의 편리함에 머물게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며, 또한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에 전심으로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3) 기도는 정확한 때에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고자 하려는 “그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그를 건져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없다고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날 밤에” 교회의 기도에 응답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일을 행하시며, 성취하시며 그리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쉬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 즉 하나님의 구원은 “그 전날 밤” 즉 가장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2025
진실한 삶의 모습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나 구주 위해 살리라 내 기쁨 한량없으리 내 갈 길 인도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진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진실한 사람은 허심탄회하고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며,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특별히 극히 사소한 일에도 성도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타협하게 되면 큰 일에도 타협하게 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3). 오직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일에 충성’하게 됩니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결국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아 2:15)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진실된 신앙과 삶을 허무는 여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과 삶이 건강하게 되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1) 스스로 정직해야 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말이 진심이었는지, 내 행동이 누군가를 속이거나 감추려는 것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2)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두려움보다 진실을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을 결국 더 큰 문제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4) 타인을 배려하는 진실이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되 상대의 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따뜻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말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