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교회가 가져야 할 것 (2)
초대 교회들은 세상적인 권세, 뛰어난 프로그램 그리고 부요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강하게 세워져 나갔습니다. 초대 교회들이 무엇을 갖고 있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3) 교회는 영적 건강을 갖고 있어야합니다. “든든히 서 가고”의 의미는 점점 더 강해지며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잃으면 마음이 있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듯이 영적 건강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초대 교회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었나요? 그들은 ‘예배’에 힘썼습니다. 초대 교회들은 열심히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으며, 기도에 전적으로 힘을 썼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사니 초대 교회들은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영원한 건축물을 쌓아 갔습니다. 영적 건강은 예배를 통해 주어집니다. (4)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보호해 주시지만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고 말씀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교회는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방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5) 교회는 ‘성령의 위로’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가 초대 교회들 안에 흘러 넘쳤습니다. 무서운 핍박을 받고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권면과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우리는 위로를 받을 때 힘을 얻게 됩니다. 하물며 성령께서 위로해 주시면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성령의 위로가 부어지면 어떤 어려움과 고난도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초대 교회들은 극심한 박해와 핍박 속에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성령의 위로하심 속에 초대 교회들은 성장했습니다. 믿음을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갔습니다. 성령의 위로가 교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믿음의 기쁨이 회복되며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는 초대 교회들이 갖고 있었던 것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과 예수님의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건강,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를 가져야 합니다.
2025
영혼을 가꾸어 주는 성경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언제나 만나고 싶어하고,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성경’ 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표현하신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섭리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다섯 가지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존경입니다. 이해입니다. 책임입니다. 그리고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뿐인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두 번째 큰 사랑은 ‘성경’ 입니다. 하나님의 큰 선물이 ‘성경’ 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그의 음성을 듣게 되며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편지’ 입니다. 또한 성경은 ‘영혼의 거울’ 입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얼굴을 그냥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영혼의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그러면서도 영혼의 모습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영혼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습을 갖고 살아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성경’만이 우리 영혼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나의 교만함과 완악함을 보게 됩니다. 나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도록 해 줍니다. 성경은 영혼의 거울로서 우리 영혼의 모습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을 예쁘게 해 주는 화장품과 같은 역할을 해 줍니다. 성도는 성경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가꾸어야 합니다.
2025
교회가 가져야 할 것(1)
원수 마귀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십자가의 복음 대신에 다른 것을 교회로 하여금 바라보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다른 허상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메시지보다는 이 세상 메시지를 더 선호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세상 방식과 문화를 더 좇아갑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핍박이 아니라 세상 유혹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 입니다. 세상 방식과 문화를 좇아가는 교회는 결코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은 ‘성령 충만’ 입니다. 초대 교회의 특징은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게 증거했습니다. 교회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과 동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무명한 자들이며, 세상적인 파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권능으로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주시는 권능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의 교회로 삼아 주셨습니다. 또한 교회가 가져야 할 것은 ‘평안’ 입니다. 본문 말씀은 초대 교회가 평안한 교회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았습니다. 평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초대 교회가 평안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갖고 있었던 평안은 예수님께서 주신 평안이었습니다(요 14:27). 세상은 평안이 아니라 편안을 주워 성도를 믿음의 삶에서 떨어지게 만듭니다. 인생의 평강은 예수님께로 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평안은 그가 주신 소망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복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이요, 장차 천국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통해 누리게 될 영광입니다. 바울은 이 평안 갖고 있었기에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것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평안은 주님과의 친밀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025
교회와 세상 가치관
세상이 참으로 빠르게 변화가 되면서 인생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무섭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삶의 풍속도 엄청나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 풍속을 보면 이전에는 혼전 임신을 쉬쉬하며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동거와 출산이 먼저 이루어지고 결혼식을 치룹니다. 혼전 임신이 오히려 축하를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결혼관과는 너무 다릅니다. 이런 변화가 신앙 생활 안에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이 더 우선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계신다’는데 굳이 교회에 나갈 필요가 있는가? ‘십일조는 율법적 명령이니 십일조를 굳이 안 해도 돼’, ‘주일 성수나 새벽 기도는 이 시대에 맞는 걸까?’ 등등. 이렇듯 신앙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과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론과 주장이 초신자나 신앙이 얇은 사람에게 신앙 성장의 엄청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교회 지도자나 신학자들이 신앙을 사변적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많은 신앙인들이 혼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요, 또한 성경 중심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교회에 주셨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결국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며,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교회를 통해 신앙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반드시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직장도, 학교도 아니며, 사교장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이며, 천국의 훈련장이며 또한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열릴 연회장입니다. 예배는 성도에게 있어서 특권이지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받아 세상에서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움을 입는 것이 예배입니다. 헌금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물입니다. 오직 바른 예배를 통하여 성도는 성도가 되게 됩니다. 바른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서 드려져야 합니다. 사람 중심의 신앙 생활은 심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2025
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하지만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가치 있는 일에 성실하고 열심히 뛰어야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한때 바울은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열심은 실상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었습니다. 다메석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바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변화된 바울의 모습은 어떤 삶의 모습이었습니까? (1)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후 그의 삶 속에서 항상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아니하고, 어떤 고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야만 신앙 생활이 천국이 됩니다. 신앙을 억지로 하게 되면 지옥 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온통 예수님만 바라보며, 삶 속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날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채워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어도 예수님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무늬만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안팎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2)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디딤돌’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바나바였습니다. 사도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회심을 의심했지만 그런 바울을 도와준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성도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고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같은 생각과 사랑을 가지고 한 마음이 되어 무슨 일이든지 겸손함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세워주셨듯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디딤돌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며, 위로하며, 사랑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세워주는 삶을 평생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2025
나의 가치!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게 많은 사람들에게 K 드라마의 우수성을 알린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에게 딸이 엄마의 인생이 어떻는가에 물었을 때 할머니가 “하루 하루가 숨이 차는 인생” 이었다고 말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소풍이었소, 아니면 불행이었소?’ 라고 딸이 묻자 할머니가 대답을 합니다. ‘너희들을 낳아 평생 너희들을 보고 살았으니 소풍이었다’. 하루 하루의 삶이 숨이 차도록 인생살이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인생을 소풍으로 여긴 것은 자녀들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자녀가 차지하는 자리는 대단합니다. 어쩌면 한 가정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녀’입니다. 자녀 때문에 웃고, 울며 또한 행복해하며 불행 해합니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녀는 보물과 같은 존재이며, 가장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녀 때문에 ‘인생은 소풍과 같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같이 부족한 사람도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지극한데 하물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37-38). 어린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느끼거나 확신하면 어떤 처지에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 같은 겸손함을 가져야만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하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는 철저하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확신해야 합니다. 어느 경우에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능히 구원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2025
사울아, 사울아!
<사울아, 사울아!> 만남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좋은 만남은 인생 행복의 밑거름이지만 나쁜 만남은 인생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 입니다. ‘몸짓’에 불과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의미가 있는 인생 ‘꽃’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한 인생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된 ‘사울’ 입니다. 바울의 예수님과의 만남은 한 개인의 사건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만남이 ‘예수님과 바울’의 만남입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이 당시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유럽에 들어간 복음이 미국에, 미국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렇듯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진 것은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을 통해서입니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바울이 다메석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 ‘꽃’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꽃’의 인생 즉 의미있는 존재로서 살아가게 되어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누군가가 구원을 받고, 내 가정, 내 직장, 내 생업터, 내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영광스러운 향기를 드러내는 ‘꽃’이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사도 바울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 속에 이 만남의 사건을 깨닫게 됩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 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 1:15).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그의 종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연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한때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였고, 그의 약속 밖에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천국 시민이요, 성도요 그리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 가운데 그의 자녀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꽃’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꽃’으로서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꽃이 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우리 역시 하나님의 꽃으로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꽃으로서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우리 몫입니다.
2025
현재가 미래입니다!
줄임말처럼 보이지만 표준말이 있는데 그 단어는 <겉볼안> 입니다. 겉을 보면 가히 안까지 짐작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들이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좋다”, “겉보기가 좋으면 속도 좋다”, “잘 차려 입은 거지가 잘 얻어먹는다” 등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외모에 깊은 관심과 정성을 쏟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말은 옛날 같으면 맞는 말이 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화장술과 성형 수술이 사람의 외모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20년 전 외모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젊은 모습이 갖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화장술이 과거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게다가 성형수술까지는 아니어도 피부 관리와 간편한 시술이 이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의 겉 모습이 지금이 오히려 과거의 모습보다 훨씬 더 젊게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얼굴이 그 사람의 심상(마음의 얼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그 사람 얼굴에 반영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 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고후 4:16). 성도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우리들이 사는 동안 사람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시선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심판자는 그 누구도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내게 하실까?’에 대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듣는 말씀이 어떤 영원한 인생을 살게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현재가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2025
전도와 구원
하나님은 한 영혼을 구하실 때 다양한 ‘전도’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나의 전도 한 마디가 한 영혼을 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꾼을 낳게 합니다. 천국의 VIP는 전도자입니다. 세상 자랑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전도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합니다. 본문 말씀 속의 빌립을 통해 전도의 열매가 어떻게 맺어지게 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전도의 열매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인기 스타로 그의 인생을 즐길 수 있었지만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온전히 순종을 했습니다. 그를 통해 에디오피아 국고를 맡은 관리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의 최대 덕목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들은 모두 징계 내지는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욕구와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순종이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끌며, 그 한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또한 전도의 열매는 우리 입을 통해 맺게 됩니다. 빌립은 국고 관리인에게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입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업이 어찌 들으리요.”전도의 시작은 입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복음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하며 됩니다. 신앙 생활의 기쁨을, 내가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천국을 증거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전도는 우리가 입을 열어야 열매가 맺어집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전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이 성령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복음을 전했듯이 우리 역시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입에서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기도가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이름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서는 날 전도의 열매들로 인하여 천국의 VIP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그리고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25
성령을 받는지라!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들이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서 영접을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 그 까닭이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두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거듭남’의 경험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게 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는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또 하나의 경험은 ‘성령 세례’ 혹은 ‘성령 충만’ 혹은 ‘성령의 부어주심’ 혹은 ‘성령 받음’ 입니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이 경험을 ‘성령 충만’, ‘성령의 임하심’, ‘성령 세례’, ‘성령을 받음’ 등으로 표현합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에게 임하게 될 때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고전 12장;롬 12장). 뿐만 아니라 성령의 계속적인 다스림을 받게 되면(내주하시는 성령)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가게 됩니다(갈 5장). 성도는 성령을 받아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게 됩니다.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거듭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받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충만 혹은 성령 세례를 성도들이 받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역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나자 성령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또한 더러운 영을 쫓아내셨습니다. 오순절날 성령 충만을 받은 사도들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 충만 혹은 성령 세례를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 권속들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행 10:44).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신 능력으로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