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나보다는 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섬기는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상급이 결정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상급이 결정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말과 생각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역시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우리들이 행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속의 바나바는 이런 일에 우리의 모델이 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보낸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온 맘으로 안디옥 교회를 섬겼습니다. 에베소서 2장 21절은 성도는 교회는 이루는 한 몸으로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에 풍성한 구원의 열매들이 맺어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서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지며 또한 부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에게 세워 주신 일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섬김이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베다니 촌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려 부었을 때 제자들이 그런 그녀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 26:10)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온 맘으로 예수님을 섬겼을 때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 준비를 위함 인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섬김이 우리도 모른 채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며 또한 생각치도 못한 훨씬 크고 가치 있는 하나님의 선한 일로 드러나게 됩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방 선교의 문이 열렸고, 사도 바울이 그 이방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사도 바울을 찾아 가서 그를 동역자로 삼고 안디옥 교회를 섬겼습니다. 두 사람이 합력하여 교회를 섬기자 안디옥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라는 정체성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큰 의미를 드러냅니다. 바울과 바나나의 협력 섬김이 교회 성장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이라는 말이 불신자들로부터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2025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절박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믿음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성도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기 종종 실패의 자리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그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의 인생은 17살부터 30살까지 실패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단 한 번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낮은 자리 그리고 힘든 자리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울 왕이 왜 망했습니까? 제사장 사무엘이 오지 않자 오직 제사장만이 드리는 제사를 본인이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무너진 것입니다. 사람의 눈 혹은 세상이 말하는 실패는 하나님 편에서는 실패가 아니라 내 믿음을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인내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실패와 어려움의 시간을 만나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리고 잠잠히 하나님의 손이 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인내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자리를 통해 우리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도의 강점은 ‘성령’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들이 우리를 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원하지 않는 상황과 처지에 이르게 되면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입니다.
2025
주의 손이 함께 하시니
사람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인생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 인생이 세워지게 됩니다. 주님이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구원이 삶 속에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무서운 핍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전파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상황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 때문에 세상에 끌려가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세상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그의 손을 펼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인생이 끝난 것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실상 하나님의 섭리로 인함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핍박과 박해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 속에 함께 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방팔방으로 전파되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그들의 인생이 가장 값진 인생이요, 복된 인생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주의 손이 우리 인생 속에 함께하시면 우리 인생이 찬란한 별처럼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아픔과 상처투성 일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실망과 아픔을 겪는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의도된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잠시 그런 인생 속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어떤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안에 보배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질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 시키십니다.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시고자 함입니다. 능력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인생 속에 주의 손이 함께 하시니 하나님의 구원이 인생 속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2025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로 알고 있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그 영원함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이 세상 삶에 목 매달리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 것들에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두고 살아갑니다.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탐욕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엔 탐욕과 욕망의 포로의 삶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눈앞의 이익과 자신만의 이익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삶이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삶 속에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인생은 그 끝이 영원한 멸망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이 땅 위에의 삶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삶이 영원한 삶에 접속되어 있음을 깨닫고 인생의 주인이시며,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인생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닫게 되어 영원한 삶에 합당한 삶을 이 땅 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악 된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 세상이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고자 애쓰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보다 눈앞의 숫자와 조건 그리고 형편에 더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갑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보다는 조건과 자신의 유익을 따르게 됩니다. 마치 나의 계산과 이익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멋진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틀린 줄 알면서도 틀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현실 모습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믿음의 자리 그리고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순간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며 또한 성령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계십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25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2)
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의 나라를 세워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팔레스타인 지방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었습니다. 그 첫 작업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쓰임을 받습니까? 첫째는 경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하나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을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힘쓰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셌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 하나님의 기적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불순종은 교만이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불순종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또한 거짓이 없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뜻과 권능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의 구원이 이루어지며 그리고 그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그래서 그의 기적들이 나타나게 하시며, 복을 선포하시며 그리고 은혜의 생수들이 흘러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사람이 그런 복들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런 복들의 통로가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그리고 기도에 전혀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25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구원을 이루신다!
비가 쏟아지고 나면 무지개를 보게 됩니다. 삶 속에 소나기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나기가 계속 내리지 않습니다. 개는 때가 옵니다. 그리고 비가 개고 나면 무지개를 보게 됩니다. 똑똑한 사람은 현실을 바라 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현실 그 자체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커녕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단순히 눈앞의 것 만을 바라보고 판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체적인 그림에서 일하십니다. 1895년 앨라바마 주에서 목화 벌레로 인하여 목화밭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목화 농사를 그만 두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는 바람에 마을 자체가 황폐해지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농부들은 목화 대신에 땅콩, 감자 그리고 옥수수 등을 심었습니다. 놀랍게도 땅콩, 감자 그리고 옥수수 등의 풍년이 들어 경제 사정은 더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농부들은 기념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념탑에 이런 글을 남겨 두었습니다. “우리는 목화 벌레에 참 감사합니다. 목화 벌레가 안 왔던 들 우리는 목화만이 우리의 길인 줄 알고 목회만 했을 터인데, 목화 벌레가 와서 목화가 아닌 감자를 심게 하고 땅콩을 심게 하여 우리를 이렇게 잘 살게 해 주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뜻을 정하신 후(경륜)에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불안과 근심의 포로 그리고 불평과 원망의 포로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삶, 다니엘의 삶 그리고 다윗의 삶 속에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그를 바라는 사람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소망이십니다.
2025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1)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그저 말로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까? (1) 경건한 사람입니다. “경건하여”의 헬라어는 ‘유세베스’ 인데 ‘신앙이 독실한’의 의미입니다. ‘경건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말씀을 묵상하여 삶 속에서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적용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해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바꾸어지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경건한 신앙은 속사람이 변하는 신앙입니다. 생각이 달라야 합니다. 인격이 달라야 합니다.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좇아가는 신앙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하게 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경건한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소금’이 되는 신앙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소금’으로 부름을 받았으니 소금의 삶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금의 맛을 잃어버린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경건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의 복의 도구로서, 은혜의 도구 그리고 구원의 도구로서 사영하십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갔던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으며, 내 생각을 따라가지 않았으며 그리고 약한 자를 도와주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 들어가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상을 받고자 하십니까? 경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025
그리스도인의 삶의 단계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편의 단계, 위기 단계 그리고 확신 단계. 첫 번째 단계는 ‘편의 단계’인데 마치 편의점을 이용하듯 내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지에 맞춰지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유익들에 주시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도록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바로 이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1 단계의 문제점은 하나님과의 친밀성이 제한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께 순종하기기 편리한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내가 편하면 순종하고, 불편하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수준이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위기 단계’ 입니다. 이 단계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단계입니다. 2 단계의 믿음의 특징은 누구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든지 아니면 돌아서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만날 때 두 번째 단계에서 예전 단계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기를 허용하실 때 우리가 단지 그 문제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 위기를 통해 하나님을 갈망하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27편 8절입니다. “주께서 나더러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하셨을 때 “주님, 내가 가서 예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지 그의 손 만을 찾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얼굴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즉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와의 관계가 더 깊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 단계는 ‘확신 단계’ 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어떤 상황 속애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하고 순종적인 관계 즉 사랑의 관계를 발전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이 단계에서는 더 이상 ‘주여, 나에게 복을 주세요’ 라는 태도보다는 ‘주여, 나를 받으소서’ 라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 단계는 복을 구하기보다는 천국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시작합니다.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가 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2025
기적을 가져오는 신앙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그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초청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신앙을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고 그 믿음을 선포하는 신앙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선포를 합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권능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병든 애니아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성도는 경험과 이성으로 예수님의 권능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권능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경을 꾸짖고, 문제들을 꾸짖고 그리고 병 낫기를 선포해야 합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기적을 가져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다윗은 그의 힘과 능력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우리들의 인생 속에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중풍병만이 병이 아닙니다. 우리는 재정의 중풍병, 인간 관계 중풍병, 불안과 염려의 중풍병 – 성도는 이런 중풍병에 주저 앉아 있거나 누워있지 말고 예수님의 권능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 하노니 인생의 중풍병아 내게서 떠날지어다!’ (2) 기도가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너희들이 나와 같은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그 말씀이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자 한다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다니엘을 죽을 지도 모르는데 기도에 전혀 힘을 썼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보수를 위해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는 바다를 갈라지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줍니다. 지는 해를 멈추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기적을 가져오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2025
잘 죽어야 합니다!
장례 예배를 드리게 될 때마다 항상 내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잘 죽어야 한다’ 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죽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살다가 죽는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 보고 죽는 것 등등이 ‘잘 죽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들이 정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육신의 장막을 떠나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이 시시하게 여겨질 때가 반드시 오게 됩니다. 혹은 이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안달을 냈는가 싶어 좀 어이가 없고 바보 같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오게 됩니다. ‘잘 죽는 것’은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내가 어디에 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정답을 <한 부자>의 비유를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그는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풍족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차고 넘치는 곡식을 위해 헌 곡간을 헐고 큰 곡간을 지어 곡식을 잘 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 부자는 그가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졌으며, 또한 누리고 싶은 것을 충분히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누릴 만큼 건강했습니다. 누가 봐도 잘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는 잘 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삶’이라고 말씀하셨으니 그가 육신의 장막을 벗게 되는 날 그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잘 죽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내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은 후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잘 살았는지를 몰라도 잘 죽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잘 죽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실제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번 스스로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예!’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