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많이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give and take’ 입니다. 잘 하면 복을 받고, 못하면 벌을 받거나 혹은 착하면 천국 가고, 악하면 지옥에 간다는 원칙입니다. 즉 나 자신의 공로에 의하면 죽음 이 후의 삶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인간은 무능한 존재입니다. 롬 3:10-12절이 선포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날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세상이 떠들썩 합니다. 논점은 ‘예수는 신인가 아니면 뛰어난 사상가인가?’ 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는 예수님은 사상가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리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골 1:15-16절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요, 다스리시는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권능과 기사로 죄악으로 잘못된 인생을 능히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로 오면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면 건강한 인생, 행복한 인생,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인생 그리고 하나님께서 본래 정해 놓은 아름다운 인생으로 고쳐지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 속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해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원수였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골 1:21-22). 우리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사람이 되어 주셔서 우리 죄를 없애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나의 주와 구주로서 믿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견고한 신앙

    우리의 신앙이 견고한 기초를 갖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온전한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잇는 분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확신은 신학적 교리에 멈추지 말고 우리 영혼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처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진실성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그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은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거부를 당했고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큰 고통과 무한한 연약함 가운데 ‘어찌하여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라고 의심하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울부짖을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함’에 대한 의심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진실하심과 그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말을 쏟아내고 겉으로 드러난 증거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을 부정하는 모양으로 나타났지만,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진실함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예수님은 보이셨고, 그 믿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했습니다. 신앙은 탁월한 사람들에게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한된 소수의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검은 것은 희다고 믿도록 우리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면 우리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도록 스스로 세뇌시키는 능력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의 마음을 진리와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신앙은 온 땅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온전히 믿으면서 그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을 보면서 ‘저것은 산이다’ 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슨 특별한 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동의를 하든 혹은 동의하지 않든지 간에 산은 산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산 만큼 견고한 사실로, 아니 산보다 무한히 변하지 않는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신앙은 주관적이지만, 오직 객관적 실재와 일치할 때 참된 신앙이 됩니다. 산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의 믿음이 참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산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그 모습대로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의 살아 계심과 말씀이 신앙의 반석입니다

성령의 사람

우리는 자신의 관심에 비추어서 세상을 바라보며, 평가하며 그리고 판단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세계관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성도는 자기 관심과 세계관이 아니라 성령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합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 따라 16개의 다른 나라의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이 사람의 계획이나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사건을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오순절 날 성령 강림 사건이 하나님의 의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을 또한 증명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사람이 인생의 실상과 허상을 구별하게 됩니다. 빛과 어둠을 구별합니다. 선악을 구별합니다. 행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합니다. 콜라 병에 콜라가 들어 있어야 하듯이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의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만이 이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판단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감정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관심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가 좋아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사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계 3:8). 그리고 예수님께서 복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붙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주님의 나라에 영원히 속할 자가 될 거라는 복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 바울은 인생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가 그의 고백 속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딤후 4:7,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에게 주신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2)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구원의 감격이 시들어지며 심지어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분주한 세상 생활 때문에 영적 무관심과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내 신앙이 무너지는 것을 느껴보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영적 무기력에 빠지고 맙니다.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길은 영적 병에 걸린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신앙은 하나님이 긍휼하심 가운데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첫 외침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간구의 첫 번째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하심’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세상에 머무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