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그 안에 있는 하나만을 빼놓고 모든 것들을 그들의 임의대로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 즉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마저도 욕심을 냄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말았고 결국 모든 것들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신령한 복들과 이 땅의 기름진 복들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깜부기가 인생의 열매를 헛되게 하지 않도록, 인생의 해충이 인생의 열매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인생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수고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으며 또한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 중에 하나만큼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지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 하신 그 하나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일 성수’입니다. 우리에게 6일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우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의 하루 즉 주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의 영광과 구원을 찬양해야 합니다. 일주일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일을 어기는 것은 탐심이요, 탐욕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나는 ‘십일조’ 입니다. 하나님이 10개 중의 9개를 우리의 것으로 주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하나를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그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신앙을 갖도록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하나’를 드리지 않는 것은 탐심과 탐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소유입니다. 은혜 가운데 주시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신령한 에덴 동산에서 살아가게 되는 영적 비결입니다. 영적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2026
변화 시키는 사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속한 땅 즉 인생을 악평을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속한 땅 즉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가 칭찬을 받는 것은 그가 자신의 사명에 대한 것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행동으로 그의 사명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따라서 각자에게는 부르심의 목적 즉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사명, 야곱은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사명, 요셉은 가문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명, 다윗은 영원한 나라를 세우는 사명,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 열 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사명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사명을 이루는 데에는 충성과 헌신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의 노역을, 요셉은 노예와 죄수의 삶을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무서운 십자가의 처형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명을 이루는 삶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포기한 것들이 더 풍성하게 회복되며 또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사명을 이룬 사람들의 인생 결말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명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명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이 자손들에게 약속의 복들이 부어지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고, 그 열매들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나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명을 이룰 때 일어납니다.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변해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사람을 지으실 때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도록 지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피조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속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 속성입니다 – 영적 존재. 다른 하나는, 지성적 속성입니다 – 지식과 지혜.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 속성입니다 – 거룩함, 진실함, 선함.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1) 그의 대리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가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그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의 무엇인지 이해하라 …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7-20).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를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시도록 즉 하나님의 양광이 선포되어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를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명’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이 자녀 된 도리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주신 사명대로 살아갔을 때 그는 믿음의 조상 그리고 복의 조상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에 따라 가나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명 보다는 “물이 넉넉하니”의 육신의 편리와 만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명을 좇아, 롯은 육신의 만족을 좇아 갔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으며, 다른 한 사람은 패망의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이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성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가 주신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시작 (2)
창세기 1장 1절에서 살펴볼 네 번째 단어는 “창조” 입니다. “창조하시니라”의 히브리어는 ‘바라’ 인데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로 만드는 절대적인 창조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이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인생 안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질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가 순종할 때 이루어 집니다. 성경 속에서 인생을 도둑질 당하고 멸망을 당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뜻과 목적이 항상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지음을 받은 자는 지으신 이의 뜻과 목적을 이루며 또한 지으신 이의 기쁨과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주의 뜻에 순종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아 임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의 선포처럼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 (시 95:1-7) 입니다. 양(성도)은 목자의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그이 경륜과 섭리 속에서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의 첫 번째 창조 사역은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아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셨을 때 그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이시며, 또한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셨을 때 말씀의 권세로써 일하셨습니다. 풍랑을 꾸짖으니 풍랑이 멈췄습니다. 걸어라 말씀하시니 걸었습니다.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일어났습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의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악한 영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을 고칩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 사역이 ‘빛’이었습니다. 흑암으로 가득 찬 땅이 밝아지도록 맨 처음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의 창조를 통해 일차적으로 땅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질서와 조화를 가져오셨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죄와 허물로 인한 영적 어둠에 있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선포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구원의 빛을 비쳐 주십니다. 그래서 생명과 기쁨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거룩하고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도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삶 속에 모시며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