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하나님 은혜의 법칙
에서와 야곱의 겉 모습의 삶을 보면 야곱은 에서의 뒤꿈치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에서는 능력과 재능이 겸비한 사람인 반면에 야곱은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야곱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 선택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의 일꾼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은 특출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방식과 세상 방식은 정반대이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 힘과 지식과 능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지 기도한다고 안 될 수가 있겠는가? 기도는 무능한 사람들이 하는 무능한 짓이지’ 등으로 기독교 신앙을 폄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이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기분은 ‘능력’이 ‘은혜’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은 성경 전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을 받은 것, 다윗이 언약의 주인공으로 선택을 받은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것,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선택 등등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힘과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며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자기 힘으로 성을 쌓고 그 성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도움을 펼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싫어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은혜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주님, 저는 무능합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모습은 세상 눈으로 보면 무능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상 하나님께는 바로 그 모습이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 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과 회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이 그의 가문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된 것은 오롯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2026
죄의 시작(2)
)> 성도는 죄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죄는 교만과 욕심을 통로로 삼아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5절) 교만과 욕심으로 인해 그만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신분을 잊은 채 창조주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교만과 욕심을 품은 바람에 죄의 포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와의 마음 속에 교만과 욕심이 들어가니 늘 보던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며,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잠언 25장 28절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성벽이 없으면, 성읍이 무너지만 인생의 모든 수고는 헛수고기 되고 맙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교만과 욕심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야만 절재의 열매를 통해 교만과 욕심을 다스리게 됩니다. 영적 암흑기이 사사 시대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마귀는 세상의 잘못된 교훈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라고 유혹을 합니다. 성도는 결단코 이런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만과 탐욕의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4) 죄는 하나님 보다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마귀의 소리를,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하와의 말을 들음으로써 죄를 범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소리 즉 사람의 소리를 좇아 살아갑니다. 베드로가 계집 종의 말을 들을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 답 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눈앞의 상황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좇기보다는 이 세상의 소리를 좇아 갑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달콤한 말로 그리고 마치 인생 성공 비결 같은 소리로 유혹했을 떼 예수님을 환경과 상황에 따라 마귀의 소리를 무시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갔습니다. 마귀는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말 속에 사랑과 관심 그리고 가치가 있는 것이 들어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있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거라면 그 소리를 좇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반드시 들어야 하며 그리고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6
죄의 시작(1)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통하여 우리는 죄의 성격을 살펴서 죄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죄는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접근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면 죄의 아름다움에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게 됩니다. 롯이 육신의 눈으로 소돔을 바라봤을 때 애굽 같았으며 에덴 동산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소돔이 멸망을 당할 때 그의 인생 역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 화려하게 포장을 하여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와는 들짐승 중에 가장 영리했고 지혜로웠던 뱀을 통해 마귀가 다가오니 그만 외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여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죄의 실체를 보여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뿌리쳐야 합니다. 대적해야 합니다. (2) 죄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할 때 우리를 삼켜 버립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했습니다. 하와의 말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만과 의심을 보게 됩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와가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과 확실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진실성을 의심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 죄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지 말지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무시하고 이방신들을 우상으로 삼고 사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으며, 온 사방으로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대로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생각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심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밥이 되고 말았으며 아울러 예수님의 경책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2026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그 안에 있는 하나만을 빼놓고 모든 것들을 그들의 임의대로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 즉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마저도 욕심을 냄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말았고 결국 모든 것들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신령한 복들과 이 땅의 기름진 복들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깜부기가 인생의 열매를 헛되게 하지 않도록, 인생의 해충이 인생의 열매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인생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수고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으며 또한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 중에 하나만큼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지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 하신 그 하나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일 성수’입니다. 우리에게 6일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우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의 하루 즉 주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의 영광과 구원을 찬양해야 합니다. 일주일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일을 어기는 것은 탐심이요, 탐욕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나는 ‘십일조’ 입니다. 하나님이 10개 중의 9개를 우리의 것으로 주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하나를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그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신앙을 갖도록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하나’를 드리지 않는 것은 탐심과 탐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소유입니다. 은혜 가운데 주시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신령한 에덴 동산에서 살아가게 되는 영적 비결입니다. 영적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