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이 될 지라(1)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통로로서 사용하시고자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선포하셨습니다. “너는 복이 될 지라.”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만들겠다는 약속입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복덩이’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그의 복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 – 오래 사는 것, 물질의 부유함, 건강의 복, 덕을 좋아하며 즐기는 복, 제명대로 사는 복 -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천국 기업에 대한 약속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런 복을 받은 사람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동일한 약속의 복에 들어오게 되는 것을 말 합니다. 그래서 벧후 1장 4절은 선포합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찬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복이 되는 삶의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이 되려면 이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이 말씀은 부모, 친척 그리고 이웃들과 담을 쌓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것이 주된 사업이었습니다. 이는 그곳의 사람들이 우상 숭배 속에 살아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우상을 자기의 신으로 삼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헛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브라함 역시 그런 세상의 가치관의 포로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가 되어야 했기에 그런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으로부터 구별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혼돈과 삶의 혼돈을 동시에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방식과 실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름으로 인해 갈등과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대충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복이 되어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복 즉 가짜의 복을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을 떠나 살아가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으로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으로부터 떠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이다’ 라는 정체성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마치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있으면 마땅히 가야 할 곳을 가게 됩니다. 성도가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의 복. 즉 복의 통로’라는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면 세상의 가짜 복들을 구걸하는 영적 거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복으로 인도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