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죄의 시작(1)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통하여 우리는 죄의 성격을 살펴서 죄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죄는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접근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면 죄의 아름다움에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게 됩니다. 롯이 육신의 눈으로 소돔을 바라봤을 때 애굽 같았으며 에덴 동산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소돔이 멸망을 당할 때 그의 인생 역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 화려하게 포장을 하여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와는 들짐승 중에 가장 영리했고 지혜로웠던 뱀을 통해 마귀가 다가오니 그만 외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여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죄의 실체를 보여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뿌리쳐야 합니다. 대적해야 합니다. (2) 죄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할 때 우리를 삼켜 버립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했습니다. 하와의 말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만과 의심을 보게 됩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와가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을까 하노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과 확실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진실성을 의심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 죄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지 말지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무시하고 이방신들을 우상으로 삼고 사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으며, 온 사방으로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대로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생각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심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밥이 되고 말았으며 아울러 예수님의 경책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2026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는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그 안에 있는 하나만을 빼놓고 모든 것들을 그들의 임의대로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 즉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마저도 욕심을 냄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말았고 결국 모든 것들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신령한 복들과 이 땅의 기름진 복들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깜부기가 인생의 열매를 헛되게 하지 않도록, 인생의 해충이 인생의 열매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인생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수고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으며 또한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 중에 하나만큼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지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 하신 그 하나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일 성수’입니다. 우리에게 6일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우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의 하루 즉 주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의 영광과 구원을 찬양해야 합니다. 일주일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일을 어기는 것은 탐심이요, 탐욕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나는 ‘십일조’ 입니다. 하나님이 10개 중의 9개를 우리의 것으로 주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하나를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그를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신앙을 갖도록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하나’를 드리지 않는 것은 탐심과 탐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소유입니다. 은혜 가운데 주시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신령한 에덴 동산에서 살아가게 되는 영적 비결입니다. 영적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2026
변화 시키는 사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속한 땅 즉 인생을 악평을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속한 땅 즉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가 칭찬을 받는 것은 그가 자신의 사명에 대한 것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행동으로 그의 사명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따라서 각자에게는 부르심의 목적 즉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사명, 야곱은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사명, 요셉은 가문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명, 다윗은 영원한 나라를 세우는 사명,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 열 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사명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사명을 이루는 데에는 충성과 헌신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의 노역을, 요셉은 노예와 죄수의 삶을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무서운 십자가의 처형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명을 이루는 삶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포기한 것들이 더 풍성하게 회복되며 또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사명을 이룬 사람들의 인생 결말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명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명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이 자손들에게 약속의 복들이 부어지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고, 그 열매들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나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명을 이룰 때 일어납니다.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변해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사람을 지으실 때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도록 지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피조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속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 속성입니다 – 영적 존재. 다른 하나는, 지성적 속성입니다 – 지식과 지혜.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 속성입니다 – 거룩함, 진실함, 선함.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1) 그의 대리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가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그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의 무엇인지 이해하라 …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7-20).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를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시도록 즉 하나님의 양광이 선포되어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를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명’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이 자녀 된 도리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주신 사명대로 살아갔을 때 그는 믿음의 조상 그리고 복의 조상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에 따라 가나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명 보다는 “물이 넉넉하니”의 육신의 편리와 만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명을 좇아, 롯은 육신의 만족을 좇아 갔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으며, 다른 한 사람은 패망의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이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성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가 주신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