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나님의 위로(2)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모른 체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움과 아픔 등에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기분이 들어 장래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보통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분노와 중독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성도는 세상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위로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의 용서하심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2절).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방관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유가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이 없었던 그들에게 죄 사함의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돈, 권세, 명예 그리고 세상 쾌락 등을 신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재능과 탁월함으로 인해 교만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등불이요 빛인데 그 말씀이 자신의 수치를 보여주면 가차없이 그 말씀을 꺼 버리고 자신이 생각과 고집으로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 숭배를 징계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우상 숭배를 통해 원수 마귀를 우리 인생을 도둑질하며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를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는 잠시 잠깐의 징계입니다. 그리고 그의 징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0,11).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에게 오면 하나님은 징계를 멈추시고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 하나님의 용서하심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심령 속에 채워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그의 이름을 높이는 자리로 들어 오게 됩니다. 나의 우상을 던져버리고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2025
하나님의 위로(1)
<하나님의 위로(1)> 한때 ‘웰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는데 오늘날은 ‘힐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웰빙’은 몸에 관한 관심이라면 ‘힐링’은 마음에 관한 관심입니다. 힐링 음악, 힐링 미술, 힐링 음료, 힐링 마사지, 힐링 삼림욕 등등 마음의 안정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힐링은 우리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산을 정상이 있지만 광야는 길이 없습니다. 바람 한번 불면 지형이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광야길에서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필요로 합니다. 가야 할 인생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우리 인생은 광야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수시로 변합니다.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가고자 한다면 영적 나침반이 되시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마실 물을 공급받고, 쉴 만한 곳에 머물게 되며, 불과 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리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인생의 나침반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세상 소리들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낙심과 절망의 포로로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하루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보다는 이 세상의 무언가를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죄는 인생의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고 멸망의 길로 끌고 갑니다. 갈증과 불만족, 근심과 절망 그리고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아가게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삶의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생을 버티면서 무언 가에 끌려 다니는 포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우리들이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이런 믿음 속에서성도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2025
감사가 가져오는 기적
감사는 그 사람의 인생을 빛나게 해 줍니다. 환경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전도 여행을 가셨을 때 열 명의 나환자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고 있었을 때 나병이 깨끗이 나음을 입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로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감사를 한 사마리아인에게 영혼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질병 치유에 대한 감사가 영혼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된 겁니다. 인생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죄와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심령 속에 생명의 생수가 흐르도록 해 주십니다. 담대함과 평안을 주십니다.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감사가 나오게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손길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예수님께로 와서 그를 낫게해 주신 구원의 손길에 대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감사가 영혼 구원의 복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한나늘 기도를 통해 아들 사무엘을 낳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세움을 입게 하셨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서원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더 멀어집니다. 주님께로 받은 바 된 그것으로 오히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또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감사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감사에 눈이 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신 감사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감사가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말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감사, 직장과 사업장을 주신 감사, 호흡하게 하시는 감사, 자녀에 대한 감사, 일용한 양식과 건강을 주시는 감사, 친구와 이웃을 주신 감사, 맘껏 예배하게 해 주시는 감사 등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감사를 드리되 진실한 감사, 믿음의 감사 그리고 사랑이 담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2025
기쁨이 있는 인생
<기쁨이 있는 인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은 마냥 기뻐할 수만 없습니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한 고비를 만나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거 말씀하시니 우리는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기뻐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3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채워지게 됩니다. 과거에도 도와주셨으니 지금도 도와주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아픔과 고통도 하나님 앞에 내려 놓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으로 우리는 기뻐하게 됩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우리 마음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들이 기쁨과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주님의 평안이 우리 안에 깃들게 됩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우리 안에 기쁨이 머물게 됩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삼을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5절). 인생살이가 힘들다고 마구잡이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믿고 주어진 인생을 힘껏 살아가야 합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가시를 통해 오히려 그의 자녀로 하여금 성공적인 인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바라봄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문제는 겉으로 고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 고통을 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에 인생의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 문제’를 ‘하나님의 선물’로 보는 지혜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기쁨이 회복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뻐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