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성도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낮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본문 말씀은 성도의 값어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4절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신분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전능하시며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신분입니다. 요일 4장 10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 선포합니다. 롬 5장 8절은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는 ‘은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심령 속에 이 은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이 은혜가 마르게 되면 금세 우리 심령 안에 불안과 근심, 불평과 원망이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마치 홀로 버려진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덮어주고 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 쳐도 태양은 가리워져 있을 뿐이지 여전히 태양은 떠 있는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 편이요,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인생의 목자로 삼고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4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신분일 뿐만 아니라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살아갈 신분입니다.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택해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사랑입니다. 또 하나의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 모습은 성령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며, 선포된 말씀을 참 진리로서 받아들이게 하십니다(5절). 성령께서 심령 안에서 일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며, 이 세상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가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도록, 마귀에게 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도록 , 믿는 자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2025
누가 믿는 사람입니까? (2)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하는 근거로 ‘성령의 부으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올 수 없습니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셔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서 믿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성령의 부으심’, ‘성령을 받음’ 입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되면 우리 삶 속에서 믿는 사람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겉모습이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의 열매는 우리 스스로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지요, 예수님을 나무입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은 나무에 달려 있을 때 가능합니다. 성도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달라붙어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도록 권능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는 두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소욕을 좇아 행하고자 하는 세력이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고자 하는 세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육체의 소욕을 좇는 세력은 죄의 본성이요, 성령의 소욕을 좇는 세력은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육체의 소욕을 이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육체의 소욕을 능히 이길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거룩한 삶을 저절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전히 죄의 본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고,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2025
누가 믿는 사람입니까?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해서 다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 여행을 통해 전도의 열매들을 안디옥 교회에서 와서 보고를 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일부 사람들이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하자 안디옥 교회 안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교인들의 마음이 구원의 진리에 대한 혼동 때문에 마음이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단들의 열심은 우리의 열심보다 훨씬 뛰어 납니다.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열심은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서 ‘이단’, ‘사이비’ 혹은 ‘미신’ 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게 부릅니까?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 큰 믿음과 적은 믿음, 산 믿음과 죽은 믿음, 참 믿음과 가짜 믿음 등등.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난 ‘믿음의 사람’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믿음,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발견되어야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믿는 사람입니까? 올바른 믿음의 내용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입니다(고후 10:18).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본문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정말로 그렇습니까?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을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2,3).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질책을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뜻과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선호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겉모습만 믿는 사람이지 실상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배, 기도, 봉사 그리고 청지기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2025
내 미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이전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이 사주, 팔자, 운명 등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성경은 우리의 삶과 미래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십니다. 사주나 팔자는 인간이 특정 시간, 날짜에 따라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특별하게 지으시고, 인생의 길을 친히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사람의 주권은 어떤 별자리나 태어난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주나 점과 같은 것은 결국 우리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고 명령하십니다. 사주와 운명을 믿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힘, 즉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 기대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신뢰와 사랑을 방해하게 됩니다. 셋쩨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주와 팔자는 우리의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과 사랑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운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8장 10-11절이 선포합니다. “너희 중에 점치는 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하는 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 용납하지 말라.”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그 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그분의 사랑과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도는 언제나 이런 하나님을 굳건히 믿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