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사울아, 사울아!
<사울아, 사울아!> 만남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좋은 만남은 인생 행복의 밑거름이지만 나쁜 만남은 인생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 입니다. ‘몸짓’에 불과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의미가 있는 인생 ‘꽃’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한 인생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된 ‘사울’ 입니다. 바울의 예수님과의 만남은 한 개인의 사건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만남이 ‘예수님과 바울’의 만남입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이 당시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유럽에 들어간 복음이 미국에, 미국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렇듯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진 것은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을 통해서입니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바울이 다메석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 ‘꽃’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꽃’의 인생 즉 의미있는 존재로서 살아가게 되어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누군가가 구원을 받고, 내 가정, 내 직장, 내 생업터, 내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영광스러운 향기를 드러내는 ‘꽃’이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사도 바울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 속에 이 만남의 사건을 깨닫게 됩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 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 1:15).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그의 종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연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한때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였고, 그의 약속 밖에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천국 시민이요, 성도요 그리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 가운데 그의 자녀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꽃’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꽃’으로서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꽃이 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우리 역시 하나님의 꽃으로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꽃으로서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우리 몫입니다.
2025
현재가 미래입니다!
줄임말처럼 보이지만 표준말이 있는데 그 단어는 <겉볼안> 입니다. 겉을 보면 가히 안까지 짐작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들이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좋다”, “겉보기가 좋으면 속도 좋다”, “잘 차려 입은 거지가 잘 얻어먹는다” 등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외모에 깊은 관심과 정성을 쏟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말은 옛날 같으면 맞는 말이 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화장술과 성형 수술이 사람의 외모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20년 전 외모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젊은 모습이 갖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화장술이 과거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게다가 성형수술까지는 아니어도 피부 관리와 간편한 시술이 이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의 겉 모습이 지금이 오히려 과거의 모습보다 훨씬 더 젊게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얼굴이 그 사람의 심상(마음의 얼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그 사람 얼굴에 반영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 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고후 4:16). 성도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우리들이 사는 동안 사람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시선을 가장 두렵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심판자는 그 누구도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내게 하실까?’에 대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듣는 말씀이 어떤 영원한 인생을 살게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현재가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2025
전도와 구원
하나님은 한 영혼을 구하실 때 다양한 ‘전도’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나의 전도 한 마디가 한 영혼을 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일꾼을 낳게 합니다. 천국의 VIP는 전도자입니다. 세상 자랑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전도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합니다. 본문 말씀 속의 빌립을 통해 전도의 열매가 어떻게 맺어지게 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전도의 열매는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인기 스타로 그의 인생을 즐길 수 있었지만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온전히 순종을 했습니다. 그를 통해 에디오피아 국고를 맡은 관리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의 최대 덕목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들은 모두 징계 내지는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욕구와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순종이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끌며, 그 한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또한 전도의 열매는 우리 입을 통해 맺게 됩니다. 빌립은 국고 관리인에게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입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업이 어찌 들으리요.”전도의 시작은 입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복음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하며 됩니다. 신앙 생활의 기쁨을, 내가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천국을 증거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전도는 우리가 입을 열어야 열매가 맺어집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전도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이 성령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복음을 전했듯이 우리 역시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입에서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기도가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이름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서는 날 전도의 열매들로 인하여 천국의 VIP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그리고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25
성령을 받는지라!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들이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서 영접을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 그 까닭이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두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거듭남’의 경험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게 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는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또 하나의 경험은 ‘성령 세례’ 혹은 ‘성령 충만’ 혹은 ‘성령의 부어주심’ 혹은 ‘성령 받음’ 입니다.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이 경험을 ‘성령 충만’, ‘성령의 임하심’, ‘성령 세례’, ‘성령을 받음’ 등으로 표현합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에게 임하게 될 때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고전 12장;롬 12장). 뿐만 아니라 성령의 계속적인 다스림을 받게 되면(내주하시는 성령)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가게 됩니다(갈 5장). 성도는 성령을 받아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게 됩니다.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거듭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받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충만 혹은 성령 세례를 성도들이 받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역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나자 성령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또한 더러운 영을 쫓아내셨습니다. 오순절날 성령 충만을 받은 사도들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 충만 혹은 성령 세례를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 권속들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행 10:44).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신 능력으로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