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 고 하면 더 하려고 기를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 많은 것들을 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따른 명령은 613개입니다. 해야 할 것은 248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365개입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이 하라는 명령보다 더 많습니다. 우리에게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한 제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는 의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안전과 복을 위해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삶을 위해 ‘하자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다스리는 능력과 지혜를 또한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동물 간의 차이점들 중의 하나는 사람은 삶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물은 본능으로 판단을 내리지 어떤 기준이 있어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삶의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을 했으니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뿐만 아니라 양심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양심에 근거하여 살아갈 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좇아 살아가는 바람에 양심을 버리고 살아갑니다. 그 바람에 스스로 사람 됨을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우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금지된 것을 피하는 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임을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고집과 아집을 버려야 합니다. 어리석음과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알러지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하지 말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복의 통로입니다. 단지 그 복의 통로가 좁을 뿐입니다. 하지만 좁더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미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사랑해야 합니다. 탐욕을 버리라고 하시니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불평 말라 하시니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 말라’하면 안 해야 합니다.
2025
복음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인생을 치유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병든 인생을 치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절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 절망을 치유하게 하는 약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절망은 치유됩니다. 12년동안 소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혈루증을 앓던 여인 그리고 38년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치유를 받아 절망의 병으로부터 해방을 받았습니다. 또한 복음은 마음의 병을 치유합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으로 인해 불평과 원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선포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위협 때문에 억울한 마음으로 동굴 속에 자기를 갇혀 두었지만 그는 결국 이런 선포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 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시 57:7). 다윗은 우울한 감정과 상황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갔습니다. 복음의 포로로 살아가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하자 그들에게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존 파이퍼 신학자는 “전도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맛보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어 마음의 병을 치유하게 합니다. 또한 복음은 육신의 병을 치유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천국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많은 중풍병자들이 그리고 못 걷는 사람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7절).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지성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치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능히 치유하고도 남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영혼의 병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절망의 병을 치유합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합니다. 육신의 병을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삶 속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의 영광과 구원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빌립이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듣고 그들의 믿고.”
2025
신앙은 행동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꾸어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삶을 살아가라고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후에 어떤 사람이 자신도 독립 운동가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독립 운동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불 속에서 날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백날 이불 속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생각을 바꾼다고 삶이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학자는 이렇게 말 합니다. ‘생각만 바꾸지 말고 바꾼 생각대로 행동을 하라.’ 부자가 되려면 ‘나는 부자야’ 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부자가 된 것처럼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뛰어난 가르침은 ‘산상수훈’ 입니다. 주옥 같은 수많은 교훈을 주시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 24-27).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혹은 마음 속에 품고 있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실제 삶 속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은 내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의 다른 한 면은 ‘순종’ 입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자 바다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메고 요단 강에 들어서자 범람하던 요단 강이 멈추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낫기를 원했지만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인만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생각으로만 그치지 말고 내 생각을 실제 삶 속에서 행동으로 들어내야 합니다. 신앙은 행동입니다.
2025
누구의 포로입니까?(2)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바람 즉 환경 탓을 하지만 실제로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방향입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신앙의 방향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가든지 혹은 세상을 향해 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든지 혹은 마귀의 포로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믿음의 닻을 올리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다스림 즉 성령의 충만을 입을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합니다. 나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신앙에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성령의 다스림을 입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면 성도는 환경 때문에 웃고 울고 합니다. 광야 생활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 생활로 인해 불편 해지니 온갖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잃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된 성도는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스데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이 세상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금 한때 자랑했던 세상의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 영광은 일시적이며 오래가지 않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언젠가 쇠약하고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게 됩니다. 무엇을 취하며, 버려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고 하늘 나라에 상급을 쌓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누가 하늘 영광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예비해 두신 면류관을 받게 됩니까?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도의 신분은 하나님의 포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