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내 미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이전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이 사주, 팔자, 운명 등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성경은 우리의 삶과 미래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십니다. 사주나 팔자는 인간이 특정 시간, 날짜에 따라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특별하게 지으시고, 인생의 길을 친히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사람의 주권은 어떤 별자리나 태어난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주나 점과 같은 것은 결국 우리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고 명령하십니다. 사주와 운명을 믿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힘, 즉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 기대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신뢰와 사랑을 방해하게 됩니다. 셋쩨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주와 팔자는 우리의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과 사랑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운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8장 10-11절이 선포합니다. “너희 중에 점치는 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하는 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 용납하지 말라.”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그 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그분의 사랑과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도는 언제나 이런 하나님을 굳건히 믿어야 합니다.
2025
믿음과 십자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삶을 위험과 희생의 삶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삶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자판기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빼 내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맞게 행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게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규칙들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겉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함이지 그를 괴롭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이삭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재확인하게 되는 은혜와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우리에게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는 삶이 겉으로는 위험과 희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규칙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자기 규칙을 따르는 삶) 잃을 것이요(멸망할 것이요) …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예수님의 규칙을 따르는 삶) 구원하리라(영원히 살리라).” 가짜 복음은 ‘나의 안전’, ‘내 인생의 편안함’, ‘내가 존중받는 것’, ‘풍족한 삶’ 등등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신앙은 ‘우상 숭배’입니다. 옳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의 저주로부터 벗어납니다. 영혼과 육신이 치유를 받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것들 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즉 내 자랑, 내 욕심, 내 중심 즉 육신의 요구를 좇아가는 나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죽을 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성도로서 부르신 부름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025
억울하면 기도하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억울하다 싶으면 기도해라. 기도하지 않으면 얻을 열매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며, 성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특혜(?)를 누리게 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실상 누군가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혹은 ‘죄를 범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해 수확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가져오는 통로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열매를 갖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성령의 충만 속에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며, 귀신들린 자들을 구원해 주시며 또한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실 수 있었나요? 그는 틈이 날 때마다 기도하셨습니다. 밤 늦도록 그리고 새벽 미명에 그는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듯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오는 통로이며 또한 그릇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결국 기도의 손을 올리느냐 혹은 올리지 않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 났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승패는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의 분량을 늘려야 합니다. 기도의 분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인생 승리가 커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기도를 할 때 영적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통로를 통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새 힘을 제공해 주십니다. 바른 예배, 바른 섬김 그리고 바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에 예배의 감격과 기쁨이 희미해지고 있다면, 거룩한 섬김에 대한 게으름과 불평이 있다면 삶이 팍팍하고 답답하다면 우선 기도의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분명히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불평과 원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2025
와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손길은 생각과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아니 생각과 이성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육신을 치유해 주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 인생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서서 걷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기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9절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나면서 걷지 못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에게 있는 믿음을 발견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그 말씀에 따른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살았던 헬라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구원을 받아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고니온 역시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을 때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할 때에 일어납니다. 에스더가 3일 금식을 했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기도 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죽으면 죽으리라”의 행함으로 아하수에로 왕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게 되자 범람하던 요단강물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과연 그럴까?’ 라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멈추지 말고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 그리고 심령 속에 나타나게 되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육신의 병만이 병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도 병입니다. 인생의 상처도 병입니다. 이 병들이 깊어지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움과 분노의 포로가 되어 더 큰 상처를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요,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인생 속에 ‘와우!’ 라는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