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하나님을 보라!
>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약점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진 말씀이 내 형편, 내 상황 그리고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는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믿음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울과 이스라엘 군사들처럼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눈에 보이는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바벨론 포로가 되어 낙심과 절망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9절). 바벨론 제국이 너무나 강력한 힘으로 보여 염려와 낙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풀은 결국 마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모든 육체’는 ‘세상 영광’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제국은 마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넘어서지 못할 것 같은 인생의 장애물도 하나님께서 입김을 한번 푹 불면 시들게 되며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9절). 성도는 낙심하게 만드는 인생의 골리앗, 인생의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1) 능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홍해를 갈라 놓으시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며, 사자의 입을 봉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그리고 죄의 권세, 사망을 깨뜨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 문제가 얼마나 무겁고 크든지 능력의 하나님께서 능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2) 우리의 상급과 보응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목마름과 공허감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상급을 주시며, 또한 보응해 주십니다. 다윗을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대적자들보다 높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상급자이십니다. 동시에 대적자를 물리쳐 주시는 보응자 이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 목자이십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존재 합니다. 양은 목자만 있으면 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면 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목자이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며,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시며 그리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2025
하나님의 위로(3)
하나님의 위로는 그의 백성들에게 임합니다. 3절은 선포합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여기에서 “광야’나 “사막” 은 우리 마음, 우리 인생을 의미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 그리고 사막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위로 속으로 들어오고자 한다면 열등감을 버려야 합니다. 4절입니다. “골짜기 마다 돋우어지며”. “골짜기”는 자기 스스로 기가 죽어 있거나 자신을 비하시키는 ‘열등감’의 마음 혹은 인생을 의미합니다. ‘열등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 가는 길을 막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막아 버립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 명의 사람은 열등감을 품게 되었고, 그 열등감이 전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옮겨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열등감 때문이었습니다.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도록 길(마음/인생)을 닦아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열등감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돋우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입니다(벧전2:9-10). 성도는 내 안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겸손과 정직함과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열등감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심령/인생을 닦아ㅑ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위로는 겸손한 심령과 삶 속에 임하게 됩니다 4절입니다.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에 평지가 될 것이요.”. 여기에서 “산”과 “언덕”은 교만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각자 마음 속에 있는 ‘교만의 산’과 ‘교만의 언덕’을 깎아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죄의 본질은 ‘교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교만으로 인해 죄를 범했습니다. 바벨탑을 쌓고자 했던 자들도 교만으로 인함이었습니다. 교만은 우리의 영적 눈과 귀를 닫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 받기 보다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에 나 자신을 두게 됩니다. 결국 성령의 근심을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을 막아버립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삶 속에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위로가 임하게 됩니다.
2025
하나님의 위로(2)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모른 체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움과 아픔 등에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기분이 들어 장래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보통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분노와 중독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성도는 세상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위로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의 용서하심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2절).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방관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유가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이 없었던 그들에게 죄 사함의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돈, 권세, 명예 그리고 세상 쾌락 등을 신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재능과 탁월함으로 인해 교만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등불이요 빛인데 그 말씀이 자신의 수치를 보여주면 가차없이 그 말씀을 꺼 버리고 자신이 생각과 고집으로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 숭배를 징계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우상 숭배를 통해 원수 마귀를 우리 인생을 도둑질하며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를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는 잠시 잠깐의 징계입니다. 그리고 그의 징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0,11).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위로를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에게 오면 하나님은 징계를 멈추시고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 하나님의 용서하심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심령 속에 채워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그의 이름을 높이는 자리로 들어 오게 됩니다. 나의 우상을 던져버리고 하나님께로 와야 합니다.
2025
하나님의 위로(1)
<하나님의 위로(1)> 한때 ‘웰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는데 오늘날은 ‘힐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웰빙’은 몸에 관한 관심이라면 ‘힐링’은 마음에 관한 관심입니다. 힐링 음악, 힐링 미술, 힐링 음료, 힐링 마사지, 힐링 삼림욕 등등 마음의 안정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힐링은 우리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산을 정상이 있지만 광야는 길이 없습니다. 바람 한번 불면 지형이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광야길에서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필요로 합니다. 가야 할 인생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우리 인생은 광야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수시로 변합니다.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가고자 한다면 영적 나침반이 되시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마실 물을 공급받고, 쉴 만한 곳에 머물게 되며, 불과 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리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인생의 나침반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세상 소리들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낙심과 절망의 포로로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하루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보다는 이 세상의 무언가를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죄는 인생의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고 멸망의 길로 끌고 갑니다. 갈증과 불만족, 근심과 절망 그리고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아가게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삶의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생을 버티면서 무언 가에 끌려 다니는 포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우리들이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이런 믿음 속에서성도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