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사람을 지으실 때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도록 지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피조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속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 속성입니다 – 영적 존재. 다른 하나는, 지성적 속성입니다 – 지식과 지혜.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 속성입니다 – 거룩함, 진실함, 선함.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1) 그의 대리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가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을 그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의 무엇인지 이해하라 …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7-20).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를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시도록 즉 하나님의 양광이 선포되어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를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명’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이 자녀 된 도리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주신 사명대로 살아갔을 때 그는 믿음의 조상 그리고 복의 조상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에 따라 가나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명 보다는 “물이 넉넉하니”의 육신의 편리와 만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명을 좇아, 롯은 육신의 만족을 좇아 갔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으며, 다른 한 사람은 패망의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이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성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가 주신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시작 (2)
창세기 1장 1절에서 살펴볼 네 번째 단어는 “창조” 입니다. “창조하시니라”의 히브리어는 ‘바라’ 인데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로 만드는 절대적인 창조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이시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인생 안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질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가 순종할 때 이루어 집니다. 성경 속에서 인생을 도둑질 당하고 멸망을 당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뜻과 목적이 항상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지음을 받은 자는 지으신 이의 뜻과 목적을 이루며 또한 지으신 이의 기쁨과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주의 뜻에 순종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아 임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의 선포처럼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 (시 95:1-7) 입니다. 양(성도)은 목자의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그이 경륜과 섭리 속에서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의 첫 번째 창조 사역은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아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셨을 때 그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이시며, 또한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셨을 때 말씀의 권세로써 일하셨습니다. 풍랑을 꾸짖으니 풍랑이 멈췄습니다. 걸어라 말씀하시니 걸었습니다.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일어났습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의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악한 영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을 고칩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 사역이 ‘빛’이었습니다. 흑암으로 가득 찬 땅이 밝아지도록 맨 처음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의 창조를 통해 일차적으로 땅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질서와 조화를 가져오셨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죄와 허물로 인한 영적 어둠에 있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선포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구원의 빛을 비쳐 주십니다. 그래서 생명과 기쁨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거룩하고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도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삶 속에 모시며 살아가야 합니다.
2026
하나님의 시작
창세기 1장 1절은 짧은 문장이지만 네 가지 단어로 큰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 단어인 “태초에”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생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44장 24절입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인생의 시작과 마감은 하나님이시니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 단어인 “하나님”은 ‘엘로힘’으로서 ‘강하고 전능하신 분’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은 강하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우리 인생 무릎을 세워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장벽을 넘어가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속에 일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귀가 심어 준 패배의식과 열등감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 단어는 “ 천지” 입니다. 정확한 번역은 “하늘들과 땅” 입니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관찰 가능한 우주 전체의 별의 수는 7조 곱하기 일 백억이라고 합니다. 은하는 태양을 중심으로 9갸의 항성 그리고 수 천억개의 별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런 거대한 은하의 수가 2조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광활한 우주가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의 주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50편 10-12절입니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다 내 것임이로다 …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들이 내 것임이로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소유물의 주인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그의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간, 물질, 재능 그리고 건강 등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인생 시작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강하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2026
형통하게 하는 사람!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 따라옵니다. 따라서 ‘주어진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한 사람을 소개하는데 느헤미야입니다. 그에 대한 평판은 ‘형통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1)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조국의 형편을 들은 느헤미야는 염려와 좌절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기도한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을 가게 되었습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성도는 외적 환경으로 인해 염려와 낙심의 포로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함으로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사명감을 갖고 헌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받은 사명에 대하여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붙잡고 그 사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일부러 예루살렘에 가서 12년 동안 헌신을 했습니다. 주변 많은 사람들로부터 모함, 비방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의 사명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 사명을 받은 신분의 사람입니다. 성도로서, 직분자로서 그리고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사명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이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합니다. (3) 일이 이루기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많은 방해와 위협들이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교회의 지체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로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의 선하신 일들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도는 불발탄이 아니라 폭탄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그 일이 이루기까지 힘써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을 끝까지 살아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흥왕 하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나로 인해 가정, 교회 그리고 지역 사회가 형통하게 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기도, 사명에 대한 헌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삶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