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혼의 안전을 지켜야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시조 중에 <탄로가>가 있었습니다. ‘늙음을 한탄하는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그 시조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늙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대로 모든 피조물은 늙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서 바지를 하나 사려고 시장 가게에 갔습니다. 허리 사이즈를 묻던 주인 여자가 두 팔을 벌려 자신의 허리를 꼭 껴안더니 “할아버지 36”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목사님은 순간 기분이 상했습니다. ‘아니 굳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필요가 있나? 아저씨라는 말도 있고, 이왕이며 기분 좋게 ‘오빠 36’ 라고 불러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자신이 할아버지 나이가 된 것이 사실이니 호칭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언제부터 인가 나이드신 분을 호칭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 역시 ‘할아버지’ 호칭을 듣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나 역시 할아버지가 되는 나이 때문에 그 호칭을 부르고 싶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늙음을 인정하기 싫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젊고자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늙어지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젊음을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부고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육신의 죽음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을 애쓰기 보다는 영원한 나라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들 두려워하라(마 10:28).” <탄로가>의 시조처럼 늙음은 지름길로 우리를 찾아오니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와 구주로서 믿고 그와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영혼은 ‘오빠’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25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께로 받은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들 즉 물질, 권세 그리고 명예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좇아 갑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설령 세상에서 온갖 화려함과 풍족한 것들을 누린다 할지라도 그 인생의 끝이 영원한 멸망이라면 그 인생은 절대로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라 실패의 인생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한 후에 그 결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약속된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종교 지도자들 중에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약속된 자들이라고 예언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선지자들을 통해 구주가 되심을 예언되었고, 그 예언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스스로도 그가 구주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가 되심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 있었던 죄인이었습니다(롬 3:23; 엡 2:3). 인간은 죄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밖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영원한 멸망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인간은 죄인이 되는 바람에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육신의 요구에 끌려 살아야만 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염려, 근심, 불평, 원망 그리고 두려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죄인으로서 인생의 결말은 영원한 불 못에서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죄인들인 인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죄로부터 건져내 주시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러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로부터 건짐을 받고자 한다면 그 죄인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생명을 드려서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나의 주와 구주로서 믿을 때 누구든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고후 5:18,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성도의 사명입니다.
2025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신앙!
오늘날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가 되면서 가치관들 역시 빠르게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옳다고 여겨진 것들이 지금은 그르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계속 맞는 것도 틀리다고 주장을 하면 진짜로 진짜가 가짜가 되며, 가짜가 진짜로 변해버립니다. 이런 안타까움이 신앙세계 속에서도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이 변했으니 교회도 변해야 된다’, ‘내 신앙이니 간섭하지 말라’, ‘지금의 예배 구조는 이전의 삶에는 맞겠지만 지금의 삶에는 맞지 않다’, ‘십일조 등 헌금 생활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해하신다’ 등등 전통적인 신앙 생활이 마치 잘못된 것처럼 여기면서 오늘날의 상황에 맞춰서 바꾸어져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교회가 한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교회 역시 지금의 상황을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혹은 신앙 생활이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앙 생활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교회는 믿음의 어머니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그리고 성도의 신앙을 길러주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에 두는 교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교회가 되는 것이 교회 본연의 모습이며, 또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하는 신앙 생활, 복음을 전하는 신앙 생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또한 순종하는 신앙 생활 그리고 신앙을 키워 나가는 신앙 생활은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신앙 생활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순종의 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때로는 좁고, 불편하며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보면 손해보는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향 끝에 하나님의 약속의 복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자리요 또한 영원한 복의 자리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순종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2025
사울과 다윗(2)
본문 말씀 속의 사울과 다윗을 통해 인생의 끝마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창대헸지만 그의 끝은 실패였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나중에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을 굳건하게 잘 마쳤습니다. 다윗은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1)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시종일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죽이고자 추격했을 때 다윗은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이기에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삼상 24:6).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면 더 이상 도망자의 삶을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더 이상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늘 먼저 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다윗은 회개를 즉각적으로 행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그를 간접적으로 죽였습니다.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다윗은 밤 늦도록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를 하며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은혜를 구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꾸지람에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남탓으로 돌렸지만 다윗은 즉시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완악하게 굳어지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살아가면 결코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우리가 마땅히 달려가야 할 길을 달려가게 됩니다. (3)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법궤가 장막 안에 있는 것이 죄송하게 생각되어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 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 …”(대상 22:14). 여기에서 “환난 중에”의 의미는 ‘극심한 열심으로’ 입니다. 다윗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금 십만 달란트”는 지금으로 매일 일 만불씩 2,000년을 드려도 채워지지 않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엄청난 것들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다윗은 정직함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