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누구의 포로입니까?(2)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바람 즉 환경 탓을 하지만 실제로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방향입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신앙의 방향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가든지 혹은 세상을 향해 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든지 혹은 마귀의 포로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믿음의 닻을 올리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다스림 즉 성령의 충만을 입을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합니다. 나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신앙에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성령의 다스림을 입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면 성도는 환경 때문에 웃고 울고 합니다. 광야 생활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 생활로 인해 불편 해지니 온갖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잃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된 성도는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스데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이 세상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금 한때 자랑했던 세상의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 영광은 일시적이며 오래가지 않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언젠가 쇠약하고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게 됩니다. 무엇을 취하며, 버려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고 하늘 나라에 상급을 쌓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누가 하늘 영광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예비해 두신 면류관을 받게 됩니까?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도의 신분은 하나님의 포로입니다.
2025
누구의 포로입니까?(1)
누구든지 인생 속에서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생은 누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영광 혹은 멸시, 생명 혹은 죽음, 구원 혹은 멸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 스데반은 하나님의 포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반면에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거짓 신앙과 욕망의 포로로서 살아가고 있던 허물을 지적했던 스데반의 설교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포로가 된 그들은 회개보다는 스데반을 죽이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기에 회개의 열매를 맺었지만, 사울 왕은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기에 여전히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눈물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지식과 감정과 더불어 반드시 성도들이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의지 혹은 행동 입니다. 성도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감정을 행함으로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성도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성도는 자신의 육신의 욕구를 좇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욕망의 포로가 된 삶은 세상과 타협하며 무지개 빛과 같은 가짜를 좇다가 결국 멸망의 자리에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욕망의 포로가 아니라 스데반처럼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그 무언가를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황금과 다이아몬드 사업을 통해 영국에 막대한 돈을 가져다주어 당시 영국민의 찬사를 받았던 세실 로즈는 오늘날 ‘약탈자’라는 오명 속에서 쓰레기 같은 인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리빙스턴은 당시에는 ‘배신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늘날 그는 전 세계인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행복한 인생입니까? 누가 행복자입니까?
2025
진실한 신앙
본문 말씀에서 스데반은 ‘증거 장막’을 통해 진실한 신앙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성막을 만들어 하는지를 세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44절). 이 말씀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우리 마음대로 혹은 취향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식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함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를 억누르거나 구속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함입니다. 성막 중심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데 그들은 성전을 하나님 자리에 두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앙은 형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외식이며, 외식적인 신앙은 하나님 앞에 ‘죄’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내쫓김을 당하고 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임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진실한 신앙이며 그리고 하나님께 흠향 되는 신앙입니다. 주일에만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성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도 계십니다. 우리 집, 직장과 사업장 속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 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예배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봉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자되기 원하며, 건강하기 원하며 또한 원하는 삶을 갖고자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신앙 생활을 삶 속에서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믿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감동을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죄를 도려내어 거듭난 속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에 심어지게 되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2025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신앙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바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는,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의 다스림이 없이는 바른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성장의 삶입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이듯이 성장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에 불과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애쓰고 노력하며, 배우고 확신하는 데에 거해야 합니다. 셋째는, 성숙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해야 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육신의 눈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팔뜨기 눈으로 살아갑니다. 한눈으로는 예수님을, 다른 한눈으로는 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기형적인 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런 기형적인 눈 혹은 시각이 보이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자신의 눈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기형적인 눈과 시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바른 눈으로 삶을 바라보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비뚤어진 믿음, 비뚤어진 생각과 자세로 살아갑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삶으로 살아가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마치 사사 시대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바른 신앙은 자기의 지식, 경험, 방법 그리고 사고 방식 등을 예수님께 복종시켜야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 앞에 자기 전공을 잊어버려야만 예수님께 순종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살아온 전문 어부였습니다. 고기 잡는 것에 베테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자기 전공을 접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밤새 헛수고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예수님께 내려 놓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물 위를 걷게 되는 기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영적 비결은 자신의 전공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신앙이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만들며 또한 구원의 열매들이 맺어지게 됩니다. 마귀는 하루에도 숱하게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려고 듭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려고 공격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만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