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신앙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바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는,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의 다스림이 없이는 바른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성장의 삶입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이듯이 성장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에 불과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애쓰고 노력하며, 배우고 확신하는 데에 거해야 합니다. 셋째는, 성숙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해야 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육신의 눈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팔뜨기 눈으로 살아갑니다. 한눈으로는 예수님을, 다른 한눈으로는 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기형적인 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런 기형적인 눈 혹은 시각이 보이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자신의 눈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기형적인 눈과 시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바른 눈으로 삶을 바라보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비뚤어진 믿음, 비뚤어진 생각과 자세로 살아갑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삶으로 살아가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마치 사사 시대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바른 신앙은 자기의 지식, 경험, 방법 그리고 사고 방식 등을 예수님께 복종시켜야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 앞에 자기 전공을 잊어버려야만 예수님께 순종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살아온 전문 어부였습니다. 고기 잡는 것에 베테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자기 전공을 접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밤새 헛수고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예수님께 내려 놓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물 위를 걷게 되는 기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영적 비결은 자신의 전공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신앙이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만들며 또한 구원의 열매들이 맺어지게 됩니다. 마귀는 하루에도 숱하게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려고 듭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려고 공격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만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됩니다.
2025
하나님 아니면 금 송아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존중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나, 사무엘 그리고 다윗 등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엘리 제사장 아들들과 사울 왕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존중하는 삶과 존중하지 않는 삶의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교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 결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존중하기 보다는 하늘이 별들을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금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대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금 송아지를 만들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신분입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갈 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요, 혹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불신앙인은 하나님을 멸시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까지도 멸시합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아갑니다. 광야 생활은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 것 같고 혹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게 여겨져서 자신만의 금 송아지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입니다. 성도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치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 풍랑을 만나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이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들이 자신만의 금 송아지를 갖고 살아가면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불신이요, 그런 삶 속에 하나님의 복은 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금 송아지를 부숴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오로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이여, 이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며, 그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2025
베푸는 삶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한 설교를 통해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하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우리가 주먹을 움켜쥐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 역시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의 복의 통로로서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후에 이런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복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렇듯 베푸는 삶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적 법칙입니다. 우리가 베푸는 삶을 살아갈 때 그 베푸는 선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아 주십니다. 잠언 기자는 선포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19:17).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도와는 달리 ‘에이, 나도 힘든데 뭘 도울 수 있어’ 등으로 자신만을 챙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재 처지에 상관없이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으로 열심히 베풀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우리에게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베푸는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도록 기다리는 삶 보다는 내가 먼저 손을 펼쳐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만이 도움이 아닙니다. 시간을 내주거나 들을 귀를 빌려줘도 좋습니다. 격려의 손길과 말도 좋습니다. 우리가 작은 사랑의 손길을 펼쳐도 상대방이 살아갈 힘을 얻거나 용기를 갖게 될 지 누가 알겠습니까?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뭔가 베풀기 전까지는 오늘을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2025
하나님의 손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베드로와 세례 요한처럼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손길과 개입에 대한 모든 계획표들이 우리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손길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합니다((고전 2:9).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근거하여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실 때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때 허점, 실수 그리고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실망과 의심을 품게 되어 믿음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허물을 범하고 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법과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도대로 그냥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그 계획대로 하나님의 손길이 내 인생 속에 개입하고 있음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삶 속에 하나님의 손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인생을 빚어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각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손길의 결과는 같습니다. 각 사람마다의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내용이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손길을 모세의 인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 노릇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복으로써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행 7:20). 그를 죽이려 했던 애굽의 궁궐에서 양육을 받게 하셨으며, 최고의 학문과 실력을 쌓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손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의 자비, 긍휼 그리고 능력 속에서 우리 인생을 빚어 가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색깔이요 디자인일지라도 나중에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그것이 실패의 색깔이요,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님의 의도된 손길이라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을 이루어 가실 때 그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십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낮추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위해 그의 구원을 이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