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거룩한 아픔
사람은 누구든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내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싸운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한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삶, 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 그리고 이 세상의 무언가를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삶,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지혜와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생명의 길과 복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결단코 우리는 우리 중심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물론 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겠다는 결단, 예수님을 나의 주님과 구주로 받아드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나비가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려면 나무에 고치를 틀고 번데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치 안이 편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꽃, 저 꽃을 오가며 꽃들에게 꽃가루를 전달해 주어 열매를 맺게 해 주는 나비가 될 수 없습니다.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나의 세계로부터 하나님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갈등과 아픔이 따르지만 그 아픔은 거룩한 아픔입니다.
2025
사울과 다윗(1)
성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생의 끝을 마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성도는 날마다 예수님께 대하여 진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생 초점이 예수님께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보다는 사람의 통치를 원하여 왕을 구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버리고 무기력한 인간의 도움을 구하는 어리석은 생각이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떼를 써서 하나님께서 왕을 갖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과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시키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나약한 사람은 자유 의지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자유 의지를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으로 세워진 왕이 사울 왕입니다. 사울 왕의 초기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울 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왕이 된 지 이 년 만에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환경과 상황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면 사울 왕의 삶의 내용은 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울 왕은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죄를 범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작 사울 왕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무시하면서도 우리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맘대로 해석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우리 주장과 생각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 왕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허물과 잘못을 지적해 주셨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죄를 정당화했습니다. 믿음은 끝까지 달려가야 하는 길과 같습니다. 멈추거나 이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울 왕이 있다면 쫓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 회개와 그에게 돌아 감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는 비결입니다.
2025
무엇이 먼저입니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인생은 ‘우선 순위’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런데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더 먼저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잃어버리는 인생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처음에는 잘 나가는 듯하지만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믿음 생활 혹은 신앙 생활은 하나님만을 붙드는 것이며 또한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먼저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든 다음에 사람도, 물질도, 건강도 그리고 소원 등을 바르게 붙을 수 있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 문제 해결을 하나님을 제쳐두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온갖 무속적 상담과 비성경적인 철학들이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범람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을 지혜와 방법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인생의 해결자이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간섭하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환경과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망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나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라는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과 징계’도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 표현입니디. “주께 징계하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욥 5:17).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 그의 백성을 아름다운 인생으로 세워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연단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고자 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두는 삶이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등이 그런 연단의 과정을 통해 멋진 인생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성도에게 어려움은 끝이 아닙니다. 무엇을 잃든지, 무슨 어려움을 겪든지, 무슨 답답함이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항상 내 편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2025
별이 빛나는 밤에
<별이 빛나는 밤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희락을 주시는데 우리는 욕망의 진흙 파이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도가 추구하고 선택해야 하는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본문은 가나의 혼인 잔치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성도가 가져야 할 참 기쁨이 무엇인지 찾고자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잔치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상징합니다(사 24:11).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포도주 즉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이 기계적이 되며 제도화되는 바람에 기쁨이 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감격이 계속 유지되기가 어렵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우리 인생 속에 새로운 은혜와 기쁨의 포도주가 부어져야 합니다. 인생의 참 기쁨이 회복되려면 첫째로, ‘내게 포도주가 없다’라는 현실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았을 때 그는 죄인이었음을 하나님께 고백을 했습니다(사 6:5). 그의 고백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포도주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에게만 포도주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즉시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포도주가 아닙니다. 행복과 기쁨은 사람과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포도주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장 물이 포도주가 변하기를 원합니다. 당장 나아야 하며, 사업이 잘 돼야 하며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물을 항아리 아귀까지 채워야 합니다.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십니다. 성도는 연회장이 아니라 물 떠온 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잔치가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물과 같은 인생을 포도주의 향기의 인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