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신앙은 행동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꾸어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삶을 살아가라고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후에 어떤 사람이 자신도 독립 운동가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독립 운동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불 속에서 날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백날 이불 속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생각을 바꾼다고 삶이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학자는 이렇게 말 합니다. ‘생각만 바꾸지 말고 바꾼 생각대로 행동을 하라.’ 부자가 되려면 ‘나는 부자야’ 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부자가 된 것처럼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뛰어난 가르침은 ‘산상수훈’ 입니다. 주옥 같은 수많은 교훈을 주시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 24-27).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혹은 마음 속에 품고 있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실제 삶 속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은 내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의 다른 한 면은 ‘순종’ 입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자 바다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메고 요단 강에 들어서자 범람하던 요단 강이 멈추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낫기를 원했지만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인만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생각으로만 그치지 말고 내 생각을 실제 삶 속에서 행동으로 들어내야 합니다. 신앙은 행동입니다.
2025
누구의 포로입니까?(2)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바람 즉 환경 탓을 하지만 실제로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방향입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신앙의 방향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가든지 혹은 세상을 향해 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든지 혹은 마귀의 포로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믿음의 닻을 올리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다스림 즉 성령의 충만을 입을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합니다. 나 자신을 주인으로 삼는 신앙에서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성령의 다스림을 입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면 성도는 환경 때문에 웃고 울고 합니다. 광야 생활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 생활로 인해 불편 해지니 온갖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잃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된 성도는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스데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이 세상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금 한때 자랑했던 세상의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 영광은 일시적이며 오래가지 않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언젠가 쇠약하고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게 됩니다. 무엇을 취하며, 버려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고 하늘 나라에 상급을 쌓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누가 하늘 영광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예비해 두신 면류관을 받게 됩니까?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도의 신분은 하나님의 포로입니다.
2025
누구의 포로입니까?(1)
누구든지 인생 속에서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생은 누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영광 혹은 멸시, 생명 혹은 죽음, 구원 혹은 멸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 스데반은 하나님의 포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반면에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거짓 신앙과 욕망의 포로로서 살아가고 있던 허물을 지적했던 스데반의 설교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포로가 된 그들은 회개보다는 스데반을 죽이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기에 회개의 열매를 맺었지만, 사울 왕은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기에 여전히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눈물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지식과 감정과 더불어 반드시 성도들이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의지 혹은 행동 입니다. 성도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감정을 행함으로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성도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성도는 자신의 육신의 욕구를 좇아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욕망의 포로가 된 삶은 세상과 타협하며 무지개 빛과 같은 가짜를 좇다가 결국 멸망의 자리에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욕망의 포로가 아니라 스데반처럼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그 무언가를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황금과 다이아몬드 사업을 통해 영국에 막대한 돈을 가져다주어 당시 영국민의 찬사를 받았던 세실 로즈는 오늘날 ‘약탈자’라는 오명 속에서 쓰레기 같은 인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리빙스턴은 당시에는 ‘배신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늘날 그는 전 세계인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행복한 인생입니까? 누가 행복자입니까?
2025
진실한 신앙
본문 말씀에서 스데반은 ‘증거 장막’을 통해 진실한 신앙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성막을 만들어 하는지를 세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44절). 이 말씀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우리 마음대로 혹은 취향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식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함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를 억누르거나 구속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함입니다. 성막 중심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데 그들은 성전을 하나님 자리에 두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앙은 형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외식이며, 외식적인 신앙은 하나님 앞에 ‘죄’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내쫓김을 당하고 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임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진실한 신앙이며 그리고 하나님께 흠향 되는 신앙입니다. 주일에만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성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도 계십니다. 우리 집, 직장과 사업장 속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 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예배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봉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자되기 원하며, 건강하기 원하며 또한 원하는 삶을 갖고자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신앙 생활을 삶 속에서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믿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감동을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죄를 도려내어 거듭난 속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에 심어지게 되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