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으라!
우리는 하늘로 솟구치는 믿음으로 살다가 때로는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왔으며 또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왜 그가 믿음의 실패를 했습니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눈을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내 눈이 보이는 대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것이 자신의 눈을 우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오자 그는 믿음 보다는 자신의 눈을 의지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그는 비굴하고 비참한 자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가나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의 뜻에 따라 우리를 두신 자리입니다 – 십일조 생활, 예배, 기도 그리고 섬김의 생활, 교회, 가정, 직장과 사업장 등등. 그런데 그 ‘가나안’에 기근 즉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그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눈에 의지하여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 23:19).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의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마귀는 하나님의 복을 빼앗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로 떨어져 나가도록 우리의 가나안에 기근을 가져다줍니다. 나의 눈으로 보면 머물러 있어야 할 가나안이 한탄과 근심의 장소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가나안이 생명의 장소요,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장소 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그러했으며, 다윗의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라를 통해 약속의 씨기 나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라가 바로의 궁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바로로 하여금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떠나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려다가 비참한 인생에 빠지고 말았지만 하나님게서 아브라함을 향한 그의 약속을 지키시려고 바로에게 재앙은 내려 사라를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잠언 3장 5-7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다 할지라도 가나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는 길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은 그 어떤 인생 기근보다 더 크십니다. 인생 기근 마저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복이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나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섬기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