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나님 아니면 금 송아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존중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나, 사무엘 그리고 다윗 등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엘리 제사장 아들들과 사울 왕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존중하는 삶과 존중하지 않는 삶의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교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 결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존중하기 보다는 하늘이 별들을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금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대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금 송아지를 만들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신분입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갈 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요, 혹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불신앙인은 하나님을 멸시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까지도 멸시합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아갑니다. 광야 생활은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 것 같고 혹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게 여겨져서 자신만의 금 송아지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입니다. 성도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치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 풍랑을 만나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이시기 때문 입니다. 우리들이 자신만의 금 송아지를 갖고 살아가면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불신이요, 그런 삶 속에 하나님의 복은 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금 송아지를 부숴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오로지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이여, 이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며, 그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2025
하나님의 손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베드로와 세례 요한처럼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손길과 개입에 대한 모든 계획표들이 우리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손길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합니다((고전 2:9).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근거하여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실 때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때 허점, 실수 그리고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실망과 의심을 품게 되어 믿음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허물을 범하고 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법과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도대로 그냥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그 계획대로 하나님의 손길이 내 인생 속에 개입하고 있음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삶 속에 하나님의 손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인생을 빚어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각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손길의 결과는 같습니다. 각 사람마다의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내용이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손길을 모세의 인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 노릇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복으로써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행 7:20). 그를 죽이려 했던 애굽의 궁궐에서 양육을 받게 하셨으며, 최고의 학문과 실력을 쌓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손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의 자비, 긍휼 그리고 능력 속에서 우리 인생을 빚어 가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색깔이요 디자인일지라도 나중에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그것이 실패의 색깔이요,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님의 의도된 손길이라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을 이루어 가실 때 그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십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낮추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위해 그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2025
하나님의 보호하심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누구나 다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갑니다. 본문 말씀은 이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20대를 노예와 죄수로 살았습니다. 그가 만난 모든 불행들은 그의 통제 밖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의 가문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을 기아로부터 살리게 하는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누군가의 영혼과 생명을 책임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에게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보호하심 속에 두고 우리 인생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았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와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그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룻은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봉양해야 하는 나오미만이 있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나오미는 룻에게 인생의 커다란 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오미를 통해 룻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이삭을 줍는 인생에서 밭의 안 주인이 되는 인생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한 끼 분의 음식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식량이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아직 있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직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이루어 지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이 곤두박질치는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본문말씀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인생은 반드시 회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복된 인생으로 반드시 세워집니다. 인생의 어려움 중에 있습니까? 낙심과 염려가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습니까? 인생의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 외에는 어떤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세워 주십니다.
2025
하나님의 약속
인생 속에서 ‘만남’은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만남이 인생 전부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전부를 좌지우지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신분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통해 그의 인생을 다스렸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부르신 우리 역시 그의 약속을 통해 우리 인생을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과 천국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약속을 “복스러운 소망” 이라고 불렀습니다(딛 2:11-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삼아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하셨습니까? 본문 말씀 1절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셔서 그의 약속을 선포하셨습니다 9창 12:2). 이렇듯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주어질 뿐만 아니라 먼저 찾아와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신분이면서도 세상 생활에서 어려움과 문제 등을 만나게 되면 그 약속이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약속을 주셨을 때 그의 나이 75세이며, 자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방랑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성도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듯이 성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약속을 이루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곧 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