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나요?
성공과 형통을 가져옵니다. 사소한 일에 진실하지 못하면 큰 일에는 말할 것도 진실한 태도가 성공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삶 속에서의 태도가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진실하고 훌륭하며 믿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남들의 이목을 받습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사람들이 우리를 주시합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집을 어떻게 가꾸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야 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남의 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이 되는 요건은 ‘진실함’ 입니다. 진실함이 없으면 우리가 행한 모든 것들이 아무런 영향력울 끼칠 수 없게 됩니다. 선한 영향력은 그 어느 것보다 ‘진실함’이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직이 최선이다>라는 말처럼 진실함이 인생없습니다. 거짓은 작은 성공을 가져올 수 있을 지 몰라도 절대로 큰 성공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비록 진실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고 여러 장애물을 만나게 되지만 결국 이기는 것은 진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 그리고 요셉은 그들의 진실함 때문에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결국은 그들은 큰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하나님의 눈이 그 사람에게 머물러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엇이 두렵고 염려가 되며 또한 무엇이 필요로 하겠습니까?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사랑과 자비로 가득하신 하나님 그리고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니 어찌 그 삶이 복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진실한 사람으로서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장소에서나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함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하는 보증수표입니다. 담대함과 확실성은 진실한 태도와 삶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잠 11:3). 말과 행위에 나의 진실함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2024
가장 뛰어난 신앙의 모습
가장 뛰어난 기도의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다음날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던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바로 이 기도가 예수님과 마귀의 다른 점입니다. 마귀(계명성)가 말했습니다.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선택을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의지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과 의지가 없는 로봇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아홉 걸음을 걸어오시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우리를 위해 남겨 놓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회개로 향하도록 만드시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회개를 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들어 두셨지만 우리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작정 천국에 우리를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회개를 하도록, 천국에 들어오도록 가만히 하십니다. 절대로 강압적으로 우리의 의지를 좌지우지 아니하십니다. 선택의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죄’도 없고 ‘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죄와 의는 의지적 자유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위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외부로부터 강제적으로 강요된 것이라면 실상 선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행동이 죄가 되려면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밝혀진 것을 범하는 의지적 행위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자기 중심적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즉 우리 의지는 우리를 위해 작용을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의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의지가 좇아가는 것을 거슬려 의지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의지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에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가장 위대한 것은 그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킨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것이지만,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의지를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켰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만 주의 주, 만 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가장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은 우리 의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이 이루어 지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2024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2)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마땅히 살아야 할 성도의 삶을 살아가니 오늘날 24억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세상은 성도들이 참된 모습으로 살아갈 때 변화되는 것입니다.
2024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1)
어느 무명의 성도의 설교로 인해 설교왕 스펄전 목사님이 태어났습니다. 무명의 모라비안 형제단들로 인해 웨슬레 목사님이 태어났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의 120명 성도들의 시작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24억이 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