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인생의 주춧돌 (2)
기독교를 대항하는 세상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믿음을 지켜 나가는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나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소리 혹은 나의 소리를 듣고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믿음을 지키는 삶의 비결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자 시절 예수님을 부인했으며 도망치기도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까? 한때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인하며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신앙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왕으로 계실 때 이루어집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그들 안에 세상과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 놓아 예수님을 모실 자리가 없이 살아갑니다. 그 결과로 불안과 걱정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자신이 왕으로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왕이 아닌데 왕처럼 살아가면 역적 죄로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왕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모든 것으로 즉 왕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갖고 있는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님 만을 붙들고 살아간다고 고백을 했습니다(빌 3:7-9). 인생을 세워 나가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인생의 집을 세우고자 하면 그 인생의 집은 무너지지만 하나님께서 인생의 집을 세워주면 그 인생의 집은 튼튼한 집이 됩니다. 우리 인생 집의 주춧돌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왕으로 삼고 살아갈 때 심령 속에 그리고 삶 속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부어지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한 대로 아름다운 인생이 세워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2024
‘말짱 도루묵 신앙’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애를 썼는데 그 결과가 헛되거나 혹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이라고 말 합니다. 조선 중기 인조는 청 나라의 침공을 피해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금방 전쟁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피난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갖고 갔던 식량이 바닥이 나자 현지에서 나는 맛없고 거친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하루는 한 어부가 직접 잡았다면 한 생선을 가져왔습니다. 나인이 요리한 생선살을 먹고 인조는 깜짝 놀랐습니다. 생선 살이 입안에서 스스로 녹을 정도로 맛이 있었습니다. 인조는 어부를 불러 생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어부는 ‘묵’이라고 말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목어’ 인데 그 지방 사투리로 발음한 것입니다. 인조는 이런 귀한 생선을 ‘묵’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며 ‘은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후로 그 생선의 이름은 ‘은어’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궁으로 돌아온 인조는 피난 때에 먹었던 은어 요리가 생각이 나서 수란간 최고 요리사에게 은어를 요리하여 가져오게 했습니다. 인조는 설레는 기대감으로 은어 요리를 먹었는데 웬걸 맛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전의 맛과는 너무 달라서 인조는 자신이 먹은 생선이 은어가 맞는지 거듭 확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맛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인조는 말했습니다. “오늘 이 후로 도루 ‘묵’이라고 불러라.” 그래서 이 생선은 ‘도루묵’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 듯이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이전의 나 중심, 나의 편리함, 나의 만족 그리고 육신의 정욕을 좇아가던 삶으로 돌아갑니다. ‘도루묵’의 신자가 되어 살아 갑니다. 안타까운 것은 ‘도루묵’의 신앙은 지금까지 해 온 신앙의 애씀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매사에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뿌릴 때와 거둘 때 사이에는 ‘가꿈’이 반드시 있습니다. 물을 주며, 잡초를 제거하며 그리고 거름을 줍니다. ‘신앙 생활에서 ‘가꿈’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선한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며, 나 자신을 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 답게 신앙의 변덕쟁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신앙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024
인생의 주춧돌 (1)
<인생의 주춧돌(1)> 우리는 어느 때보다 반 기독교적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 아시아 지역 그리고 아프리카 등에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핍박이 일어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등은 문화와 인권이라는 미명 하에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앞서 살아갔던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반 기독교적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그들은 세상 부와 권력 등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무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사장들, 사두개인들 그리고 성전 맡은 자입니다. 그들은 당시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만큼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권력자들이 힘 없는 두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싫어함” (2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지배층이었던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극도로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 전파와 행하신 기적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자 그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길 까봐 바리새인들과 내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자 그들을 옥에 가두게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전한 메시지를 통해 남자 만해도 오천 명이 넘게 예수님을 믿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니 생명의 열매들이 맺어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만나는 어려움들과 유혹들로 인하여 믿음을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충성스러웠던 신앙을 추억으로 삼고 여러 가지 핑계로 신앙의 변질을 덮으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은 이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어둡고 또한 어둡게 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어둡게 살 것인지 아니면 빛을 드러내며 살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품에 안겨 있는데 주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갈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인생의 주인이신 데 이를 버리고 세상을 주인으로 삼고 살 것입니까? 성도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춧돌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빛을 비추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을 세우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자가 됩니다.
2024
신앙의 초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흑인 남성들과 히스패닉 사람들은 공화당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뜨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공화당을 지지했던 주된 요인은 ‘먹고 살기 힘들다’ 였다고 합니다. 민주당 정권 속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져 정권을 바꾸는데 표를 던졌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인생을 무너뜨리는 위험성은 ‘물질적인 불황’이 아니라 ‘삶의 불황’ 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풍랑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인생의 풍랑’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성경 속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 역시 인생의 거센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건강한 인생을 세워갔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모습은 인생의 풍랑 중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힘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힘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버리는 힘’ 입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면 제일 먼저 짐을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풍랑을 통해 내가 이제까지 버리지 못한 것을 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그들의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물을 버리며, 아버지와 배를 버렸습니다. 세관직을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았을 때 세상적으로 자랑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 다 버렸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인생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는 나쁜 습관과 생각, 거짓, 불의, 시기, 질투 그리고 방탕함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풍랑 속에서도 우리는 능히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명 운동 선수들 역시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다고 합니다. 그때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훈련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인생 풍랑을 이기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인생을 살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안일함과 교만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됩니다. 적당주의와 게으름이 우리를 옭아맵니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약속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갓난 아이의 마음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며 또한 의존해야 합니다. 단순한 믿음이 그의 권능을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