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열정을 나누는 사람!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 너 열심을 다해 늘 충성하고 온 정성을 다해 주 봉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 342). 사람은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막상 열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삶 속에서 경험하는 압박, 긴장 그리고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열정으로 살아가기기 쉽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열정보다는 정으로 살아갑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갈 때는 열정을 품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 일터에 나가는 것이 싫어 지게 됩니다. 처음에 직분을 맡게 되면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교회를 섬기는 데에 열정적이다가 시간이 흐르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혹은 건성 건성으로 교회를 섬기게 됩니다. 누구든지 한때 미래를 열광하고 꿈을 꾸었으나 지금은 열정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매일 새로운 열정을 보충하며 살아가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새로운 만나를 주신 것은 어제의 열정이 오늘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의 열정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열정’의 단어 ‘enthusiasm’은 ‘하나님이 영감을 일으키는’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n theo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우리는 우리 속에 매일 하나님의 영감을 새롭게 채워놓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로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 담대함과 확신, 자존감과 겸손, 사랑과 인내 등을 통해 우리는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로마서 12:11은 선포합니다.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우리는 “열심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는 데에,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열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하니 우리는 힘써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불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감사를 해야 합니다. 직장과 사업장에 대한 불평보다는 직장과 사업장 자체에 감사를 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 가정을 돌보는 일 등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뿐 더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시간과 자유를 빼앗긴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내 가정과 교회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 가정과 교회 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감사하면 새로운 열정이 샘물처럼 솟아나게 됩니다. 열정을 퍼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25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친밀감의 사랑, 죄인이며 원수였던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불 같은 열정의 사랑 그리고 독생자를 죽게 하신 하나님의 헌신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즉 바르게 사랑해야 합니다. (1)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그 인생은 도둑질 당하며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두 개의 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는 줄은 ‘교제의 줄’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는 줄은 ‘관계의 줄’ 입니다. 우리들이 ‘교제의 줄’을 놓아버리면 자동적으로 ‘관계의 줄’이 풀어지고 맙니다. ‘관계의 줄’이 끊어지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교제의 줄’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관계의 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며 약속하신 복들을 부어 주십니다. 친밀한 사랑은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예배’ 입니다.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과 가까이 만들어 줍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성령님으로부터 은혜의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영의 양식을 먹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짐승의 밥이 되듯이 성도는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기도’입니다. 신앙 생활은 듣는 것입니다. 듣지 않으면 길을 잃습니다. 나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며, 기도하는 사람이 영적 청력이 뛰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영적 대화를 기뻐하십니다. “나를 전심으로 찾고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하신 약속대로 위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스위치를 켜기만 됩니다. 또한 기도할 때 믿음의 불을 붙여주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믿음의 불을 붙여주게 하는 통로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 약속 받은 하나님의 복들을 선포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새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성도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우리 역시 온전한 사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2025
얼굴 값을 해야지요!
‘꼴값 떨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꼴’은 얼굴 혹은 몸의 형태와 자세를 의미하며, ‘값’은 ‘품격’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품격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 품격대로 살아가지 않는 모습을 비꼬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때 교육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한다고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상이 ‘계몽주의’ 입니다. 사람을 교육시키면 유토피아가 세워진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이 사람의 품격을 갖추게 한다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 이미 입증이 되었습니다.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훨씬 더 크고 무겁습니다. 교육이 그 사람의 품성을 더 좋게 하거나 혹은 바꾸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 ‘꼴값’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꼴값’의 삶을 살아가려면 ‘눈’이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눈’의 판단 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바꾸어지지 않으면 그 교회 생활은 종교 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꼴값’ 달라지지 않는 것은 종교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교만의 눈, 의심의 눈, 시기의 눈 그리고 무례한 눈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 온 것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종교 생활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을 실족하게 만들어 버리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종교 생활의 견지에서 보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최고로 멋지며 본받을 만한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에 기도 세 번, 일주일에 금식 두 번 그리고 모든 헌금들과 구제 활동 등은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될 만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꼴값은 전혀 바꾸어지지 않았습니다. 교만과 위선 그리고 자랑과 자기 의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겸손과 진실함 그리고 하나님 자랑과 하나님의 의의 삶을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신앙 생활은 내 눈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 세상의 판단과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눈. 나의 선호도와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다스림을 사모하는 눈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의 얼굴과 삶 그리고 말씨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2025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 성경 속에서 멸망을 당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 불순종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당했으며, 징계 후에도 여전히 말씀을 무시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성도가 어떤 물질관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거짓 신을 갖고 살아가는데 그 중의 가장 강력한 거짓 신은 ‘물질’ 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전무후무한 모습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물질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주재로 삼고 그가 주시는 은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을 공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 라는 의미는 어떤 감정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살아가는 성도는 물질을 자신의 신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물질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선한 일을 위하여 물질을 섬기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에서는 팥 죽 한 그릇을 위해 하나님의 것을 무시했습니다. 삼손은 자기 욕망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무시했습니다. 발람은 발락이 준 뇌물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을 위해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성도의 물질관은 우리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 그리고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도가 가져야 할 물질관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으로 살지 않고 위선적인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사랑과 헌신이 아니라 자기 자랑과 의를 더 위에 두었습니다. 결국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성령을 속이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물질 전체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물질에 대한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을 그들의 신으로 삼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물질의 탐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속이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나바처럼 진실함으로 성령을 좇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춰질 것이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진실함으로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