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내 입에는 힘이 있습니다!
중세 대표적인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는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만물의 창조주 되시는 주여, 주님께서는 지혜의 모든 보화로 천사들에게 각자의 자리를 지정해 주셨고 찬란한 하늘 위에 경이로운 순서를 정하시어 각자의 자리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언 우주를 아름답게 수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와 진리의 원천이시며 만물의 고귀한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나 저는 어두워진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사오니 저의 마음에 주님의 밝은 빛을 비추시어 저의 무지와 죄악을 몰아 내소서.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의 입술을 온전하게 하시었나이다. 제 입의 말을 주장하시고 자의 입술을 어루만지사 주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게 하시고 속히 배우게 하시며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 언제든 선포할 수 있게 하소서. 들어가고 나가는 저의 발걸음을 지켜주소서 저의 발걸음을 본향집으로 인도하소서. 주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십니다. 그리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문제의 산이 너무 높다고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산을 향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특별히 인생의 폭풍우 한가운데 있을 때 우리 입을 경계해야 합니다. 잠언 18장 21절은 선포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말이 환경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말이 만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얼마나 꼬였는지에 대해 투덜거리며 불평하면 우리는 불평과 짜증으로 채워진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부정적인 상황에 있으면 당연히 불평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믿음의 말을 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요엘 3:10).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애물 앞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누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줄 알았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말한 대로 그가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가난에 대하서 불평하지 말고 부유함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산을 만났을 때 믿음으로 산이 옮겨지도록 선포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선포했듯이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도 크십니다(요일 4:4). 우리 입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나의 인생을 바꾸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나의 입을 바꾸어야 합니다.
2025
주님께 하듯이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 속에서 성도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은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24). 어떤 사람들은 승승장구의 삶을 살아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럭 저럭의 삶을 살아갑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종의 자세를 갖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수고한 대로 열매들을 맺는 성공적인 삶이 되게 하십니다. 자신이 뱉은 말을 끝까지 지키고 일터에 정시에 나타납니다. 자신의 일에 열심히 일하며 아프다는 핑계로 일찍 퇴근하거나 결근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더 일찍 출근하고, 좀더 늦게 퇴근하는 자세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주어진 일에 게을리하며 잡담과 인터넷 채팅으로 업무의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 왜 제게 복을 주시지 않는데요. 왜 저는 승진이 되지 않는데요’ 라고 불평을 하는 사람에게 무슨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겠습니까? 예배와 기도에 충성스러운 사람은 직장과 사업장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 마음을 다하여 열심히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everybody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아니하고 somebody로 살아가는 사람을 복 주십니다. 성도는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면 안 됩니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대충 살아가는 살아 가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주신 것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허름할지라도 잘 가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직장이 좀 안 좋아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내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사업장이 아직 원하는 궤도에 오르지 않았어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성실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복을 부어 주십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삶의 현장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하듯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그런 삶을 보상해 주십니다. “주께 하듯” 살아가나요?
2025
나는 예수님의 종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를 섬기도록 일곱 일꾼들을 세울 때 사도들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본문 말씀 3절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1) 교회 일꾼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일꾼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과는 달리 성령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은사로써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일꾼은 온유함, 겸손함, 사랑, 절제, 이내 그리고 충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그와 같은 성품을 갖게 됩니다. (2) 교회 일꾼은 ‘지혜 충만’해야 합니다. 일꾼은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자기 주장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순수하지만 지혜는 없습니다. 일꾼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일꾼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런 지혜를 갖게 됩니다. (3) 교회 일꾼은 ‘칭찬’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칭찬은 사랑의 비타민과 같아서 칭찬을 하면 할수록 칭찬을 듣는 사람이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다 합니다. 그래서 교회 일꾼은 칭찬을 하는 사람이요, 동시에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4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은 삶 속에서 칭찬받을 만한 행실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특히 정직해야 합니다. 입술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덕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교회의 얼굴입니다. 말과 행실에 있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 답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예수님의 종이요, 사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며,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행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종이 되어 몸 된 교회를 섬길 때에 교회는 든든히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 말은 아무리 좋은 것들이 많아도 그냥 두면 쓸모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좋은 것들을 많이 갖고 있어도, 머리가 좋고 재능이 많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종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2025
나는 예수님의 종
예수님께서는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일부러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해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우리를 위해 종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분인고로 예수님처럼 종 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왜 종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종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히브리파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이 있었는데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많이 제외가 되는 바람에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도들은 자신들의 섬김 내용이 구제가 하나님의 말씀 증거와 기도 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식량과 재정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을 택했습니다, 일곱 명의 집사를 뽑게 되었습니다. 신약에서의 ‘봉사’, ‘섬김’은 ‘디아코노스’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디아코노스’는 ‘일꾼’, ‘하인’ 등의 의미입니다. 결국 교회의 직무는 ‘계급’이 아니라 ‘봉사 직’ 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지체로서 예수님과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종이요, 하인입니다. 예수님의 종으로서 기도, 물질 그리고 재능으로 교회를 섬기며 또한 다른 성도들을 섬겨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모두는 하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일꾼의 마음으로 교회의 손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호도와 취향으로 교회를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뜻과 명령에 따라 섬기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과 자원함으로 예수님과 그의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우리 자신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른 섬김이 이루어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놀라운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에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절).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교회를 섬기면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됩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모든 일에 예수님의 눈을 의식하고 예수님의 일꾼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도 예수님을 뵙는 날에 주님께서 주실 상급을 고대하며 예수님과 그의 교회를 열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