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주는 은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의 수치와 허물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술에 취하여 그만 벌거벗고 자는 수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노아가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평을 들었지만 이것은 그가 정말로 죄가 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노아는 홍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복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노아가 그만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게 되자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고 자는 수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형통해지게 될 때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을 비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자 밧세바의 사건과 인구 계수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아갔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영생의 선물과 천국 기업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되면 육체의 소욕을 좇아 환경에 져서 수치스러운 자리에 서게 됩니다.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 부하든지 혹은 가난하든지, 넉넉하든지 혹은 부족하든지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소유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놓쳐 그만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는 수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가 벌거벗는 자는 수치를 보여줄 때 셈과 야벳은 그것을 덮어주었지만 반면에 함을 그것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를 알게 된 노아는 셈과 야벳에게 축복하여 그들과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들을 누리게 했지만, 함에게는 저주를 선포함으로 함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 통로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물을 덮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처럼,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사랑으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8절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0장 12절입니다. “미움을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셈과 야벳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과 수치를 덮어주신 것처럼 노아의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의 되어 주셨고, 야벳을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하나님의 덮어주심의 은혜를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품고, 은혜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