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신앙(2)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지 7일 후에 홍수가 터졌으니 노아는 방주 안에서 382일을 보낸 셈입니다. 본문 말씀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니 노아가 방주로부터 나왔습니다. 노아는 물이 걷힌 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물이 걷힌 지 56일이나 지나서 그는 방주로부터 나왔습니다. 방주 안에 오랫동안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며 힘들었겠습니까?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가보자고 얼마나 자주 성화를 내겠습니까?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방주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의 스케줄을 따라 일하하시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표대로 혹은 우리 시간을 따라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심과 염려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 방식을 좆아갑니다. 세상의 풍속과 관습 그리고 세상 방식과 흐름을 좇아 살아갑니다. 자신을 인생의 주인과 신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 있느냐 혹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노아처럼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자 한다면 그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지 전에 우리를 그의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연단의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연단의 시간은 ‘기다림’ 입니다. 성도는 ‘기다림의 여정’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눈앞의 환경과 상황이 우리를 급한 마음으로 몰아내도 우리 뜻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당장’의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직’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기에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10:23).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이나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인생 기다림의 여정에서 걸어가야 하는 바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인생 속에 많은 바람들이 불어오지만 그 바람대로 살아가지 말고 마땅히 가야 할 방향으로 돛을 달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의 돛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4,5). 성도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볼 때까지 불평과 원망으로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게 되며,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노아가 방주 속에 382일 동안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에 두십니다.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에 하나님의 구원이 보이지 않아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