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은 어디에?
사람은 누구든지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관심을 안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관심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관심은 성령의 임하심을 통해 제자들의 예수 그리스도 증인 된 삶이었지만 제자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그가 우리에게 주신 ‘소명’ 입니다, 그 소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을부어주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의 한계 속에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썩어질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도록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신 목적이며, 장차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말씀대로 살지 못하니까 스스로 마음 속에 올무와 덫을 놓고 살아갑니다. 열등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예수님께로 오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잘되게 됩니다. 복을 받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극히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은혜의 메시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주신 거룩한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복들을 약속하신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물질, 건강, 재능, 직장과 사업장 등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복이지만 동시에 이 복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만의 것으로 삼지 말고 그 은혜를 나누어 주는 통로가 되는 삶을 성도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장차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기업을 주님과 누리게 되는 겁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기 실현’과 ‘자기 만족’이 아니라 ‘자기 부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자기 만족’. ‘자기 꿈 실현’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도구로 삼아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삶 속에서 이루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