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안전을 지켜야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시조 중에 <탄로가>가 있었습니다. ‘늙음을 한탄하는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그 시조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늙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대로 모든 피조물은 늙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서 바지를 하나 사려고 시장 가게에 갔습니다. 허리 사이즈를 묻던 주인 여자가 두 팔을 벌려 자신의 허리를 꼭 껴안더니 “할아버지 36”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목사님은 순간 기분이 상했습니다. ‘아니 굳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필요가 있나? 아저씨라는 말도 있고, 이왕이며 기분 좋게 ‘오빠 36’ 라고 불러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자신이 할아버지 나이가 된 것이 사실이니 호칭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언제부터 인가 나이드신 분을 호칭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 역시 ‘할아버지’ 호칭을 듣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나 역시 할아버지가 되는 나이 때문에 그 호칭을 부르고 싶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늙음을 인정하기 싫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젊고자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늙어지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젊음을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부고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육신의 죽음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을 애쓰기 보다는 영원한 나라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들 두려워하라(마 10:28).” <탄로가>의 시조처럼 늙음은 지름길로 우리를 찾아오니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와 구주로서 믿고 그와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영혼은 ‘오빠’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